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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으로 읽는 세상] 라흐마니노프 변주곡

라흐마니노프의 대표작 ‘파가니니 주제에 의한 랩소디’는 랩소디라는 말이 들어가 있지만 사실은 변주곡 형식으로 작곡된 곡이다. 변주곡은 하나의 주제를 멜로디, 화음, 박자, 리듬, 조성 등 여러 가지 측면에서 다양하게 변형해나가는 음악을 말한다. 주제선율은 파가니니의 ‘카프리스’ 제24번에서 가져 왔다.
 
변주의 본질은 ‘변화’이다. 하지만 변주곡에서의 변화는 ‘한정된 틀 안에서의 변화’를 의미한다. 변주곡의 각 변주들은 어떤 형태로 변형되든 주제를 그 안에 품고 있다. 아무리 자유분방하게 변형된 경우라도 주제와의 연관성은 늘 음악 속에 잠복해 있다. 주제의 뼈대는 유지한 채 끊임없이 새로운 상상력을 펼쳐나가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변주곡은 통일성 속에 다양성을 구현해내는 가장 이상적인 음악이라 할 수 있다.
 
‘파가니니 주제에 의한 랩소디’에 나오는 다양한 변주들에서도 역시 원곡인 ‘카프리스’ 24번과의 연관성을 찾을 수 있다. 그런데 그중에서 아무리 들어도 원곡과의 연관성을 찾을 수 없는 것이 있다. 바로 제18변주이다. 제18변주는 서정적이고 로맨틱한 멜로디 때문에 영화와 CF의 배경음악으로 자주 등장하는데, 원곡인 파가니니의 ‘카프리스’ 24번과는 정서부터 다르다. 카프리스는 빠르고 경쾌한 반면, 제18변주는 느리고 로맨틱하다.
 
이처럼 변주곡 중에는 그냥 들어서는 전혀 주제와의 연관성을 알 수 없는 것이 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서 이런 선율이 나왔을까? 라흐마니노프는 파가니니의 주제 선율을 여러 차례 변형했다. 먼저 단조에서 장조로 옮기고, 다른 조를 바꾼 다음, 그렇게 바뀐 멜로디의 첫 소절의 음들을 거꾸로 배열하고, 템포를 느리게 설정했다. 이렇게 변신에 변신을 거듭한 끝에 나온 것이 제18변주다. 경쾌하고 발랄한 파가니니의 주제선율이 달콤하고 낭만적인 선율로 바뀌게 된 과정에는 바로 이런 비밀이 숨어 있었던 것이다.

진회숙 / 음악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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