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노트] 노화 치료약?
20여년 전, 지인의 권유로 우연히 머리카락으로 건강 및 노화 상태를 측정하는 유전자 검사를 하였는데, 검사 결과 필자의 ‘신체나이’가 ‘실제 나이’보다 10년 이상 많게 나왔다면서 정밀검사를 받아보라는 조언을 들었다. 그런데도 한창 바쁘다는 핑계로 차일피일 미루다가, 몇 개월 뒤 회의 도중 쓰러져 결국 입원 수술을 하게 되었다. 거리에서 쓰러지지 않은 게 다행이었다고 가슴을 쓸어내리면서도, 이미 노화 진행이 빨라 질환 가능성이 있음을 경고해 준, 머리카락 유전자 검사 결과를 귀담아듣지 않았던 걸 후회했었다.‘노화’는 어린 나이부터 이미 시작되는 현상으로, ‘생물학적 노화’의 측정 개념은 수십 년 전부터 있었고, 노화를 정량화하는 진단법들이 1990년대 말부터 대중에게 서서히 사용되기 시작하였다. ‘노쇠지수’에 이어, 머리카락, 혈액 및 침 속의 유전자 검사 및 2009년도 노벨 생리학상을 받은 ‘텔로미어: DNA 말단의 비암호화된 염기서열’의 길이를 측정하는 검사 등이 있다.
올여름 미국 연예인 ‘카다시안’ 리얼리티 쇼에서, 노화 상태를 측정하는 에피소드가 방영되면서 타액 자가검사 키트가 소개되었는데, 머리카락 및 타액 자가 검사 키트는 이미 상용화되어 맞춤 화장품 및 맞춤 건강식 전략 기반정보로 사용되고 있다.
더 나아가 자신의 다른 조직이나 장기보다 노화가 빠른 장기를 찾아내어 해당 질환을 예방하거나 진행을 늦추려는 의약학적 노력도 계속되고 있다.
미국 UCLA 대학 연구 결과, 여성의 경우 신체의 다른 부위보다 가슴 조직이 빨리 노화되고, 특히 ‘유방암’ 조직은 다른 조직에 비해 무려 12살이나 더 노화가 된 것으로 나타났다고 보고한 기사가 있다. 2013년 배우 앤젤리나 졸리가 유전자 검사에서 유방암 발병 확률이 85% 넘게 나오자 ‘건강수명’을 늘리고자 예방 차원에서 유방 절제술을 시행했음을 고백하여 세계를 놀라게 한 뉴스도 기억할 것이다.
또한 과학저널 Nature에 실린 미국 스탠퍼드 의대팀의 연구결과를 인용한 기사에 따르면, 심장 노화가 빠른 사람은 정상 속도로 노화하는 심장을 가진 사람보다 심부전 위험이 250% 높았고, 뇌 노화가 빠른 사람은 대조군보다 향후 5년간 인지 기능 저하를 보일 가능성이 180%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고 한다.
얼마 전에 ‘이 안에 당신의 수명이 들어있습니다’라는 책을 읽었다. 마치 길이가 짧을수록 노화의 정도가 심함을 나타내는 ‘텔로미어’처럼, 자기에게 배달된 상자를 열었을 때 짧은 끈을 받은 사람은 긴 끈을 받은 사람에 비해 빨리 노화하고 죽는다는 내용의 소설이다. 상자 앞에서 저마다 체념과 저항과 순응 등 다양한 반응을 보이면서, 바로 상자를 열어 끈을 확인하는 사람도 있고 아예 열지 않는 운명론자도 있었다. 나라면 상자를 열 것인가?
노화와 유전학의 대가인 미국 하버드대 교수 싱클레어 박사는 ‘노화는 질병’이라고 선언하였다. 고혈압 환자에게 고혈압약을 처방하듯이 ‘노화라는 질병’에 걸린 환자들을 치료하는 약을 개발하여 수명을 연장할 수 있다는 다분히 선언적인 의미이다.
‘노화 시계’와 연관 있는 물질들이 발견되고 있으며, 최근에도 코펜하겐 대학 연구원들이 OSER1이라는 특정 단백질이 장수에 영향을 미친다는 사실을 알아냈다고 한다. 이제, 자신의 유전자 검사 결과에 따른 맞춤형 ‘저속노화’ 생활 습관을 넘어 보다 근본적인 ‘노화 치료제’ 개발로 ‘건강 수명’을 늘리는 가능성에 대한 기대가 높아지고 있다.
류은주 / 동아 ST 미국 대표·동국대학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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