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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령차별 없는 수평적 문화 구축해야

중앙일보·USC 공동기획
힐링 캘리포니아 프로젝트

차별 했다가 100만불 집단소송
한국 60세 정년퇴직 문화 부작용
일하는 70~80대 현역 “행복해”

LA소재 한인 중견회사를 20년 넘게 다닌 김희숙(가명·60대)씨도 코로나19 팬데믹 직전 갑작스러운 해고통보를 받은 후 “나이가 많다는 이유로 쫓겨난 것 같다”며 회사를 상대로 부당해고 소송을 제기해 이겼다. 김씨의 변호인은 부당해고 배상 민사소송과 별도로 오버타임 미지급 등 집단소송까지 제기했고, 결국 김씨가 다녔던 회사는 소송 3년여 만에 전·현직 직원에게 총 100만 달러가 넘는 배상액을 합의금으로 지급했다.

 
문화적 관습이 문제 키워
 
한인회사들의 ‘나이’를 문제 삼는 문화적 관습은 주로 한국에 본사(Head Quarter)를 둔 지사 또는 상사에서 많이 일어나고 있다.  
 
노동법 전문가에 따르면 한국의 정년퇴직법을 원인으로 꼽는다. 한국 본사 지시에 따라 일부 지사 또는 상사들은 소송을 감수하더라도 나이를 이유로 해고하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실제 한국에서는 법에 따라 직장인은 60세까지 일할 수 있으며, 60세가 넘으면 대부분 퇴직해야 한다.
 
주 변호사는 “한국 본사에서 미국의 연령차별 금지법을 외면할 때가 굉장히 많다. 그러다 보니 해고한 전 직장인이 노동법 위반으로 제기하는 소송에 휘말린다”고 전했다.
 
박씨가 N사를 상대로 제기한 소장에는 '나이가 많아 보인다, 왜 은퇴하지 않나, 회사를 떠나야 할 때가 아닌가' 등 노골적인 연령차별 행태가 명시됐다.

박씨가 N사를 상대로 제기한 소장에는 '나이가 많아 보인다, 왜 은퇴하지 않나, 회사를 떠나야 할 때가 아닌가' 등 노골적인 연령차별 행태가 명시됐다.

이뿐만 아니라 노동법 변호사들에 따르면 특히 한인회사 내 ▶직급에 따른 경직된 상하관계 ▶법적 근거 없는 선후배 문화 ▶나이 많은 사람에 대한 부정적 인식 등으로 인해 연방 노동법을 위반하는 직장문화가 자주 발생하고 있다.  
 
‘나이’를 강조하는 한인 직원 간 갈등도 적지 않다. 미국에서 성장한 영어권 직원은 동료를 평등하게 인식하고 대하지만 한국 문화에 익숙한 직원은 반말을 사용하거나 인사 등을 강요하다가 충돌하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잡코리아USA 브랜든 이 대표는 “한인회사에서 젊은 직원을 채용해도 MZ세대는 자신들의 가치와 맞지 않으면 곧바로 일을 그만두곤 한다”면서 “젊은 한인 직원을 다루기 어려워하는 회사가 늘고 있다. 일부는 한국 문화에 익숙한 중장년층 경력자를 선호할 정도”라고 전했다.
 
나이 벗어난 수평문화 중요
 
한인 법조계는 연령차별 금지법 등 노동법 준수와 수평적 직장문화 자리매김 노력이 중요하다고 입을 모았다.  
 
김해원 변호사는 “고용주 상당수가 40세 이상 직원을 나이 때문에 차별하거나 해고해서는 안 된다는 사실을 잘 모른다”면서 “나이, 임신, 장애, 인종, 종교 등을 문제삼아 직원을 해고하면 안 된다. 특히 부당해고 소송을 제기한 직원은 사측의 행위가 불법적이고 공공방침에 어긋났다며 징벌적 배상(punitive damages)도 청구할 수 있다”고 말했다.  
 
연령/나이 차별로 해고된 직장인은 정신건강에도 빨간불이 켜진다.  
 
수잔 정 정신과전문의는 “직장인이 나이 차별을 받고 해고되면 경제적 어려움 등 실존하는 데 큰 타격을 받는다”면서 “특히 ‘회사나 사회가 (나이 든) 나의 존재를 필요로 하지 않는다’며 충격을 받는다. 한인 남성의 경우 일이 곧 본인이 누구인지 증명하는 ‘정체성’일 때가 많다. 무기력·불면증·자존감 저하 등 우울증을 겪고 신체 건강마저 악화될 수 있다”고 말했다.  
 
실제 한국 중앙대 사회학과 김기연·이민아 박사의 ‘한인 시니어 연령차별과 자살(Age Discrimination and Suicidal Ideation Among Korean Older Adults)’ 논문에 따르면 연령차별을 경험한 시니어는 자살 생각을 2.3배나 더 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연령차별 없는 80대 현역도
 
82세인 서영석(왼쪽 첫 번째) 마취과 전문의가 동료들과 수술을 끝낸 뒤 웃고 있다. [서영석씨 제공]

82세인 서영석(왼쪽 첫 번째) 마취과 전문의가 동료들과 수술을 끝낸 뒤 웃고 있다. [서영석씨 제공]

반면 연령을 제한하거나 차별하지 않는 미국의 문화로 70~80대가 됐어도 은퇴하지 않고 일하는 한인 시니어들도 많아지고 있다. 이들은 일을 계속할수록 ‘자아실현과 건강관리’에 큰 도움이 된다고 강조했다.  
 
LA평통 회장을 역임한 서영석(82) 마취과 전문의도 여전히 현역 의사다. 그가 15년째 근무하는 LA한인타운 세인트 빈센트 안과 수술센터는 아예 그를 놓아줄 생각이 없다. 서 전문의를 대체할 전문가를 찾기 어려워서다.  
 
서 전문의는 “이 나이에도 어딘가에서 내가 필요하다는 사실에 자부심을 느낀다”면서 “은퇴 나이가 지났지만 병원 직원들이 능력을 인정해 주니 고맙다. 손이 떨리기 전까지는 일을 계속할 생각”이라고 말했다.  
 
수잔 정(79) 정신과 전문의도 유튜브 정신건강 채널을 운영하고, 각종 상담과 강연 활동을 하고 있다. 정 전문의는 “젊었을 때는 돈을 벌고 살아남기 위해 일을 했다면 지금은 정말 하고 싶은 일을 하기에 행복을 느낀다”고 강조했다.  
 
65세 전후 은퇴했다가 새로운 직업에 도전하는 시니어도 보인다. 특히 한인 남성 시니어들 사이에서는 경비원과 우버 드라이버가 인기다. 이들은 연금을 넉넉하게 받아도 일하지 않는 일상은 견디기 힘들다고 전했다. 시니어에게 직업은 우울증 극복 방법인 셈이다.
 
데이비드 안(71)씨는LA한인타운 오피스빌딩 경비원으로 3년째 일하고 있다. 안씨는  “은퇴 후 10년을 놀았지만 하루하루가 견디기 힘들었다”면서 “새로운 일에 도전하고 싶어 경비원 시험을 봤다. 시니어 경비원을 찾는 곳도 생각보다 많다. 일상이 무료하고 지겹다면 새로운 일에 도전해 볼 것을 권한다”고 말했다.  

김형재 기자 kim.ian@korea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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