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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우리말] 우리 춤과 치유

우리 민족에 대한 중국 역사책의 설명을 보면 춤과 노래를 좋아하고, 술을 즐기며, 하늘에 제사를 지낸다는 표현이 자주 나옵니다. 춤과 노래를 밤늦도록 즐긴다고 하는데 술이 빠질 수는 없을 겁니다. 이러한 음주 가무는 주로 하늘에 제사를 지내는 장면에서 나옵니다. 제사는 엄숙하기만 한 행위가 아닙니다. 제사는 감사의 시간이기도 하고 위로의 시간이기도 하며, 치유의 시간이기도 합니다. 우리의 간절함이 마음의 병을 낫게 하고, 몸의 병을 고칩니다.  
 
북소리와 함께 치유하는 부여의 영고(迎鼓), 하늘에 닿는 춤으로 치유하는 예의 무천(舞天)에서 우리는 이름만으로도 위로를 받습니다. 제사의 이름이 곧 음악이고, 춤입니다. 북소리를 듣는 사람도, 하늘도 감명을 받고, 하늘을 바라보면서 추는 춤에 희열을 맛봅니다. 제사는 그래서 다른 말로 하면 축제입니다. 모두가 모여 즐거우면 하늘에 우리의 뜻이 닿는 겁니다. 서로 감사하고, 서로 흥겹게 노래하고 뛰며 춤추면 그게 바로 축제이고 제사입니다.
 
우리 춤에 양반춤이라는 춤이 있습니다. 양반춤은 오광대놀이에서 양반을 풍자하기 위한 춤으로 설명하고 있습니다. 때로는 양반탈을 쓰고, 우스꽝스러운 몸짓을 보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이런 양반춤에서 위로를 받았을까 하는 의심도 듭니다. 풍자가 시원하기는 하나 치유가 되지는 못하는 듯합니다. 오히려 양반춤은 양반이나 선비가 마음으로 추는 춤이어야 위로와 치유가 되는 것 같습니다. 그런 의미에서라면 양반춤을 선비춤이라고 바꾸어도 좋을 듯합니다. 양반에 대한 풍자보다는 선비의 마음속 여유와 깨달음을 보여주는 춤이라고나 할까요?
 
하긴 양반이라는 단어도 풍자의 뜻으로 쓰이지 않는다면 좋은 의미인 경우가 많습니다. 예를 들어 ‘그만하면 양반’이라든지 ‘양반 되기는 글렀다’는 말은 양반을 좋게 보는 표현입니다. 선비라는 말은 현세대에도 좋은 의미로 남아있습니다. 흰 도포 자락을 휘날리는 선비는 주로 글공부를 즐겨하고, 청렴한 사람으로 나옵니다. 물론 지나치게 경제관념이 없는 답답한 사람으로 묘사되기도 하죠. 하지만 선비정신이 우리를 지탱해 온 정신의 하나임은 부인할 수 없습니다. 어떻게 살 것인가를 고민하고, 돈에 휘둘리지 않는 마음이야말로 지금도 지켜야 할 가치입니다.
 
양반춤, 선비춤은 춤은 종류도 다양합니다. 제가 가장 좋아하는 춤은 이종태 선생께서 추는 양반춤입니다. 이 춤은 바람 부는 대로, 물 흐르듯이 자연스럽게 덩실거립니다. 어깨춤에 활짝 펴는 부채 소리는 바람을 가릅니다. 한 마리 학처럼 한 발로 서기도 하고 뱅그르르 돌다가 훌쩍 뛰어오릅니다. 한 걸음 한 걸음 내딛는 걸음은 너울너울 인생길입니다. 춤이 멋들어집니다. 인생의 고갯길을 넘어온 춤입니다.
 
이종태 선생 춤의 백미는 표정에 있습니다. 제가 볼 때 이종태 선생의 춤은 얼굴로 추는 춤입니다. 세상살이를 잊고, 세상일에서 떠난 초월의 표정이며, 달관의 몸짓입니다. 자연스러운 웃음에 보는 이도 웃음 짓고, 함께 시름을 잊습니다. 보는 이도 어깨춤이 절로 납니다. 한을 담은 우리 춤이 많이 있습니다만, 달관의 경지를 보여주는 춤이라면 이종태 선생의 양반춤을 들고 싶습니다. 가볍지 않은 춤사위에, 인생을 담은 손짓, 희로애락을 지나는 걸음걸이는 우리 춤의 치유 효과를 보여줍니다. 도포 자락 휘날리며, 사뿐사뿐 걷는 걸음은 물욕 없는 선비의 청렴을 나타내는 듯합니다.
 
저는 이 춤을 보고 양반춤을 배우고 싶었습니다. 우리 춤의 긍정적 효과네요. 1년 넘게 양반춤을 배우고 있지만 그 맛이 나오지 않습니다. 당연히 그 멋과도 거리가 멉니다. 무엇보다도 그 표정을 담기에는 가야 할 길이 아득합니다. 지난주 요양원에서 국악치유공연을 했습니다. 처음으로 저도 양반춤에 참가하게 되었습니다. 네 명 중 한 명으로 참여한 것입니다. 다른 이의 모습에 가려져 다행이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생각보다 많이 어색하지 않아서 안심하였습니다. 그런데 춤을 추는 동안 긴장이 서서히 사라지면서 저도 모르게 표정도 자연스레 풀렸습니다. 뛰어오름도 가벼워졌습니다. 자연스러운 웃음도 나옵니다. 그 시간 세상일이 머릿속에 남지 않습니다. 춤을 마무리하면서 한 발로 서는데 흔들림이 없네요. 자연스러우니 몸이 가벼워집니다. 몸도 마음도 가벼워졌습니다.

조현용 / 경희대학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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