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장으로 읽는 책] 카프카의 아포리즘
“주인 나리, 어디로 가시나요?” “모른다.” 내가 대답했다. “단지 여기에서 떠나는 거야, 줄곧 여기에서 떠나는 거라고. 그래야만 내 목적지에 도착할 수 있어.” “그럼 나리께서는 목적지를 아신단 말씀인가요?” 그가 물었다. “그렇다네.” 내가 대답했다. “내가 이미 말했잖아.” “‘여기-에서-떠나는 것,’ 그것이 내 목표야.”편영수 엮고 옮김 『카프카의 아포리즘』
현대인의 불안과 소외, 부조리를 천착했던 카프카의 짧은 글 모음집이다. 폐결핵으로 생사의 기로에 선 그가 두 권의 팔절판 노트에 쓴 ‘아포리즘’, 메모장과 일기·편지 등에서 발췌했다. 인용문은 ‘출발’의 일부. 카프카 문학에 맞닿은 단상들을 읽는 재미가 있다.
“이 세상의 결정적인 특징은 덧없음이다. ~폐허에서 새로운 삶이 꽃핀다는 것은 삶의 지속보다는 죽음의 지속을 입증하는 것이다”(팔절판 노트). “세상의 때 묻은 눈으로 보면, 우리는 긴 터널 속에서, 그것도 입구의 빛이 더 이상 보이지 않고, 출구의 빛도 아주 희미해서 시선이 끊임없이 빛을 찾지만 입구도 출구도 어디인지 모를 정도로 빛이 사라져버린 지점에서 사고를 당한 열차 승객들과 같은 입장에 처해 있다”(팔절판 노트). “어른이 책상을 밀어서 아이가 카드로 만든 집이 무너지면, 아이는 화를 내지. 그러나 카드로 만든 집은 책상이 밀렸기 때문이 아니라, 그 집이 카드로 만들어졌기 때문에 무너진 거야”(막스 브로트에게 보낸 편지). “예술의 자기 망각과 자기 지양:도피인데 산책 혹은 공격인 척한다”(팔절판 노트).
양성희 / 중앙일보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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