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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호철의 시가 있는 풍경] 가을 들꽃

종일 구부려 일하다  
 
네가 생각나  
잔뜩 엎드린 너를 보려고  
나도 잔뜩 엎드려 본다 
 
 
너의 걸음과 나의 걸음의 행간  
가까운 듯하였는데 여전히 멀어  
네 소리가 듣고 싶어  
네 옆에 산다  
소음과 발길이 끊어진 들녘  
바람에 스치는 소리 들리고  
나는 너를 보고 있다  
하늘이 호수를 내려다보듯  
어느새 웃고 있는 너의 모습  
온 세상 사람이 웃어도  
너의 웃음만 내게 들린다  
 
 
고개 든 날보다 고개 숙인 날이 좋아  
온종일 너를 향해 고개 숙인다  
엎드린 네가 아프면 어쩌나  
네 모습 자세히 보려고  
기억 사라지지 않게 자꾸만 본다  
 
 
[신호철]

[신호철]

습관처럼 고개 드는 것보다 고개 숙이는 것에 익숙하다. 그러다 보니 눈에 띄지 않는 작은 것들이 보이고 그들에게 애착이 간다. 때론 활짝 핀 꽃보다 꽃을 피우고 난 후 고개 숙인 들꽃이 더 아름답다. 사람의 인적이 끊긴 나지막한 들길을 걷다 보면 만나게 되는 들꽃. 화려하지 않고 탐스럽지도 않지만 다소곳이 피고 난 후 낮게 엎드린 모습에 나의 시선도 자꾸 너처럼 낮아진다. 언제 자랐는지 키를 키운 갈대 사이로 이름 모를 들꽃들이 부끄럽게 숨겨져 있다. 갈대숲을 헤치며 다가가면 부끄러워 고개 돌린다. 그렇듯 들꽃 한 송이를 발견하면 내 안의 어두움은 사라지고 빛나는 별빛이 몰려와 어느새 나는 푸른 밤하늘이 된다. 너는 꼭 다른 행성의 별들이 떨어져 피운 다섯 모서리의 작은 별 조각 같다. 아직 따뜻하고 부드러운 별빛 같다. 내 손에 너를 감싸면 조그만 네 얼굴엔 홍조가 띤다. 하늘 아래 가장 아름다운 너는 가을 들꽃이다.  
 
더위를 물리는 비가 추적추적 내린다. 마른 풀밭에 생기가 돈다. 어디서 날아와 풀이 되었나? 무엇이 그리워 들꽃이 되었나? 꽃이 피고 또 질 때면 숲의 모든 눈들은 풀꽃을 본다. 숲의 모든 귀들은 작은 꽃들의 나직한 속삭임을 듣는다. 누구의 손이 스쳐 간 것이 아니었음을 알고 있음에도 나는 숲속 모두에게 고마움의 편지를 쓴다. 지켜주고 안아주는 숲의 사랑을 느낀다. “조금만 더 견디어 내. 이제 하늘의 선물이 갈증 난 네 목을 적셔줄 테니까” 숲의 가슴은 넓고 포근하여 가을 길을 예비하는 단비를 맞이한다. 아주 작은 들꽃 하나에도 하늘의 선물은 무심히 지나치지 않는다. 가을 들녘에 생기가 돈다. 서로에게 기대어 들꽃 한 송이 피어난다.  
 
바쁜 하루가 지나간다. 종일 구부려 일하다 네가 보고 싶어 너에게 간다. 어느 들, 어느 모퉁이에 구부려 핀 너는 밀려오는 파도의 잔상을 기억해 내고, 그 안에 아직 남겨져 있는 더운 숨을 느낀다. 기억의 순간 참지 못하고 오열하는 눈물을 본다. 어깨를 들썩이며 울고 있는 너에게 편지를 쓴다. 침묵의 바다로부터, 무념의 숲으로부터. 바람에 스쳐 흔들리는 갈대 사진을 동봉해서 함께 피어난다. 가을이여 가을 들꽃이여 간절하면 보인다 지나쳤는데 간절하면 들린다 무심했는데 간절한 시간, 간절한 마음에 네 목소리가 들리고, 네가 보인다 나의 그리운 이여 (시인, 화가)  
 

신호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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