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별 뉴스를 확인하세요.

많이 본 뉴스

광고닫기

기사공유

  • 페이스북
  • 트위터
  • 카카오톡
  • 카카오스토리
  • 네이버
  • 공유

100년 전 뉴욕 한인 유학생 평안남도 출신·의대생이 최다

창간 특집기획-‘100년 전 뉴욕 한인 유학생의 삶’

북미유학생총회, 1925년 〈우라키〉 발간 시작
당시 한인 유학생 자세한 생활상 담아
학비 마련 위해 방학마다 고된 노동

북미유학생총회가 1925년부터 1936년까지 발간한 뉴욕 최초 우리말 잡지 〈우라키〉. 빛바랜 종이에 가장자리가 바스러졌다.

북미유학생총회가 1925년부터 1936년까지 발간한 뉴욕 최초 우리말 잡지 〈우라키〉. 빛바랜 종이에 가장자리가 바스러졌다.

〈우라키〉에 실린 1920년대 유미학생 통계표.

〈우라키〉에 실린 1920년대 유미학생 통계표.

“쉽게 바스러지니 조심해서 다뤄주세요.”  
 
뜨거운 뙤약볕이 내리쬐는 지난 8월, 창간 49주년을 맞아 뉴욕중앙일보는 100년 전 한인들의 발자취를 따라가 보기 위해 컬럼비아대 도서관 6층 희귀 서적 열람실을 찾았다. 책들 사이로 한참을 걸어 들어가야 입장이 가능했던 그곳에서 1920~1940년대 한인 선조들의 흔적을 발견할 수 있었다.
 
한 장 한 장 조심스럽게 펼칠 때마다 부스러지던 기록 속에는, 그 시절 한인들의 희로애락이 담겨 있었다.  
 
〈우라키〉 원본이 보관된 컬럼비아대 도서관 희귀 서적 열람실.

〈우라키〉 원본이 보관된 컬럼비아대 도서관 희귀 서적 열람실.

작은 방에서 탄생한 뉴욕 최초 우리말 잡지
 
지금으로부터 100년 전 뉴욕 최초의 우리말 잡지가 탄생했다. 1919년 3·1운동에 영향을 받아 조직된 ‘북미유학생총회’가 1925년부터 〈우라키〉라는 우리말 잡지를 발간하기 시작한 것.  
 
이 잡지를 살펴보면 1920~1930년대 유학생의 자세한 생활상을 알 수 있다. 〈우라키〉는 발간 때마다 뒷면에 ‘유미학생 통계표’ 발표했고, 유학생들의 출신지역이나 전공분야도 분석해 소개했다. 이에 따르면 창간 당시 유학생을 가장 많이 배출한 지역은 평안남도, 한인 유학생의 최다 전공은 의학이었다.
 
미국에 갓 도착한 신규 유학생들을 위해 각 대학 등록금과 평균 생활비도 소개됐고, 필자들의 전공을 중심으로 교육이나 종교·과학·경제·음악에 이르는 다양한 분야의 글들이 게재됐다.  
 
하지만 우라키 역시 일본의 검열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었다. 당시 경제·정치적 여건으로 인해 미국에서 원고를 수집해 한국에서 인쇄한 후 다시 미국으로 운송하는 방식으로 잡지가 출판됐는데, 이 과정에서 원고의 절반 이상이 일본총독부의 검열로 삭제되기도 했다. 제목만 있고 내용은 통째로 날아간 기사들도 있었다.  
 
우라키의 편집장이었던 정일형 씨는 회고록을 통해 “뉴욕한인교회의 작은 방에서 수많은 원고를 정리하고, 일본 당국의 감시를 뚫고 발행하기까지 그 고초는 이루 말할 수 없다”고 전했다.  
 
1936년 7호를 마지막으로 폐간된 우라키 원본은 현재 컬럼비아대 도서관 희귀 서적 열람실에 보관돼 있다. 조금만 힘을 줘서 페이지를 넘기면 테두리가 떨어져 나갈 만큼 빛바랜 상태로.  
 
내일이 보이지 않는 하루하루
 
“‘미국’이라는 명사부터가 금전과 부를 연상시키기 때문에, 우리 유학생들의 생활도 넉넉한 줄 아는 이들이 많다. 하지만 현실은 많이 다르다”. 1925년 〈우라키〉의 창간호에 실린 글의 한 대목이다. 영화의 첫 등장, ‘포드’의 자동차 생산 붐 등에 따른 부수산업의 증가로 발전을 거듭하는 미국인들과는 달리 1920년대 뉴욕 한인들은 사회의 가장 낮은 저변을 차지하고 있었다. 한인들은 학생을 포함해 대개 노동을 하거나 미국인 가정에 들어가 가정부나 요리사로 일을 했고, 여름에는 낯선 거리를 전전하며 향이나 중국차를 파는 등 내일이 보이지 않는 다급한 하루하루를 살아갔다. 여름방학에 노동을 해서 학비를 마련하지 않으면 휴학해야 했고, 1년간 재학 기록이 없으면 이민국에서 조사를 시작하기 때문에 유학생들은 필사적으로 일자리를 구했다. 〈우라키〉에는 거의 매호마다 유학생들의 설움이 담긴 노동 체험기가 실렸다.
 

일자리 얻기 위해 과장 광고까지  

 
요리 경험 없어도 ‘동양요리사’로 광고   
조리법 몰라 친구에게 전화로 문의  
생소한 재료에 출근 첫날 해고당하기도
 
1919년 3.1운동에 영향을 자극을 받아 조직된 ‘북미유학생총회’. 1924년 6월 일리노이주 시카고에서 찍은 사진. 작은 사진은 1920년대 컬럼비아대에서 공부했던 유학생 오천석 씨. 〈우라키〉 편집에 참여하기도 했다.

1919년 3.1운동에 영향을 자극을 받아 조직된 ‘북미유학생총회’. 1924년 6월 일리노이주 시카고에서 찍은 사진. 작은 사진은 1920년대 컬럼비아대에서 공부했던 유학생 오천석 씨. 〈우라키〉 편집에 참여하기도 했다.

요리는 해본 적 없지만, 아무튼 동양요리사입니다
 
당시 한인유학생들이 직업을 구하는 방법은 크게 두 가지였다. 직업소개소를 통하거나, 신문에 직접 광고를 내는 방식이었다. 이때 유학생들은 일자리를 얻기 위해 과대광고도 일삼았다. 당시 구직난이 심해 그렇게 해야 겨우 일자리를 구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이에 요리를 해본 적도 없는 사람이 ‘동양요리전문가’라며 광고를 내는 경우가 많았다. 일단 광고를 내고, 부지런히 요리책을 읽거나 친구들로부터 요리 경험담을 들어 대충 지식을 갖춘 다음 미국 가정집에 일하러 가는 경우가 많았다. 우선 일자리를 얻어 인심 좋은 주인을 만나면 버티는 것이고, 그게 아니면 쫓겨날 각오로 직업을 구했던 것이다.  
 
스트링빈은 처음 봅니다만
 
1920년대 말에서 1930년대 초반까지 컬럼비아대에서 공부했던 유학생 오천석 씨 역시 과대광고를 통해 한 미국 가정에 요리사로 취직했다. 그리고 출근 첫날, 집주인은 저녁거리로 스트링빈을 사왔다. 스트링빈이 껍질째 먹는 콩이라는 사실을 상상조차 할 수 없었던 오 씨는 일단 콩을 까기 시작했다. 아무리 까도 깨알보다 조금 큰 콩알은 한 숟갈 분량도 나오지 않았고. 이 적은 양을 온 식구가 먹는다는 게 이해가 안 갔다. 마침 부엌으로 들어온 주인집 아들을 본 오 씨는 상 위에 벌려둔 콩을 옆으로 치우고 그에게 스트링빈을 어떻게 먹는지 아냐고 슬쩍 물어봤다. 이 사실을 알지 못하는 아들은 콩을 자르는 방법부터 물에 넣고 끓이는 방법까지 상세히 알려줬고, 그 덕에 오 씨는 첫날을 아슬아슬하게 넘길 수 있었다.  
 
‘비프’가 아니라 ‘비트’였다
 
1930년대 드류대학에서 공부했던 유학생 정일형 씨는 오 씨만큼의 요리경험도 없었다. 겨우 일자리를 구한 정 씨는 요리하다 문제가 생기면 친구인 오 씨에게 전화 상담을 하기로 약속하고 떨리는 마음으로 첫 출근을 했다. 하지만 첫날부터 난관에 봉착했다. 하필이면 주인이 반찬거리로 정 씨가 평생 본 적 없는 식재료인  ‘비트’를 사왔기 때문. 정 씨는 바로 오 씨에게 전화를 걸었지만, 문제가 더 커졌다. 오 씨가 ‘비트’를 ‘비프(소고기)’로 잘못 알아들은 것이다. 오 씨는 “재료를 오븐에 넣고 화씨 450도 정도로 구워내면 된다”며 “미국인들은 ‘레어’, ‘미디움’, ‘웰 던’ 등 3가지 굽기로 요리해서 먹으니 그것만 유의하면 될 것”이라고 전했다. 정 씨는 친구의 지시대로 비트를 오븐에 넣고 기다렸다. 곧 이상한 냄새를 맡고 온 주인이 주방에 가득 찬 연기를 보고 놀라서 오븐을 열었고, 안에는 새까맣게 타버린 비트가 있었다. 그렇게 정 씨는 취직한 지 몇 시간 만에 직장을 잃었다.  
 
〈우라키〉 창간호에 따르면 1925년 미주 유학생 수는 대학생이 300여명, 중·고등학생이 150여명이었다. 뉴욕한인교회 70년사는 “당시 미국에 온 유학생치고 폭염이 쏟아지는 캘리포니아 농장에서 오렌지를 따보지 않은 사람이 드물고, 남의 집에 들어가 온갖 굴욕을 견디며 밑바닥의 삶을 살아보지 않은 이가 드물었다”고 기술했다. 편견과는 달리, 수백명의 유학생들은 타국에서 살아남기 위해 누구보다 고군분투하고 있었던 셈이다. 

윤지혜 기자

Log in to Twitter or Facebook account to connect
with the Korea JoongAng Daily
help-image Social comment?
lock icon

To write comments, please log in to one of the accounts.

Standards Board Policy (0/250자)


많이 본 뉴스





실시간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