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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우리말] 바보가 남을 바보로 여긴다

요즘 세상 돌아가는 걸 보면 갈등과 분노가 한가득입니다. 갈등과 분노의 원인은 주로 나는 옳은데, 다른 사람은 옳지 않다는 생각 때문입니다. 달리 말하자면 나는 괜찮은 사람인데, 상대는 바보이거나 나쁜 사람이라는 인식이 갈등을 일으키고, 그 갈등이 해결되지 않으면 분노가 됩니다. 사람들은 늘 얼굴이 벌겋고, 화가 나 있습니다. 위험한 사회입니다. 언제든지 싸움이 일어나도 이상하지 않은 사회인 겁니다. 불안 불안합니다.
 
바보는 어떤 사람이 바보일까요? 바보라는 말의 어원은 ‘밥보’에서 왔다고 보는 것이 일반적입니다. 밥보는 밥을 많이 먹는 사람입니다. 먹보랑 비슷한 말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먹보에는 바보의 느낌은 없습니다. 그저 많이 먹으니 욕심꾸러기라는 생각은 들 겁니다. 바보는 욕심보다는 어리석음과 연결이 됩니다. 왜일까요? 무엇이 밥을 많이 먹는 것을 어리석게 만들었을까요?  
 
저는 바보가 어리석은 것은 많이 먹기 때문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오히려 바보가 어리석은 것은 남을 돌아보지 않기 때문입니다. 남의 눈치를 살피지 않으니 어리석은 겁니다. 남의 사정을 헤아리지 않으니 어리석은 것입니다. 자신의 배가 불러도 계속 먹으면 어리석습니다. 특히 주변에 배고픈 사람이 있다면 그 어리석은 정도는 심해집니다. 내 배가 부른데도 다른 이는 살피지 않고 계속 꾸역꾸역 입안으로 음식을 넣습니다. 그게 바보입니다.  
 
그렇게 보면 이 세상에는 바보가 넘쳐납니다. 내 배를 부르게 하는데 신경이 가 있어서, 주변의 배고픔을 모르는 체한다면 바보입니다. 옆집의 누가 배고픈지, 이웃의 누가 힘들어하는지 신경 쓰지 않는다면 바보 소리를 들어도 할 말이 없습니다. 가난한 사람이 많은 나라는 달리 말하면 배부른 바보가 많은 나라입니다. 빈부의 격차가 심한 나라는 못된 바보가 많은 나라입니다. 불행한 사람이 많은 나라는 만족하는 바보가 많은 나라입니다.  
 
그런데 바보는 자기가 바보인 줄은 모릅니다. 자기는 문제가 없고 상대가 문제라고 생각하기에 쉽게 남을 바보라고 욕합니다. 오히려 가난한 사람을 바보라고 합니다. 노력하지 않아서 그렇다고 욕을 합니다. 힘들어하는 사람을 바보 취급합니다. 세상에 바보가 너무 많다고 혀를 찹니다. 자신은 바보가 아니라고 착각하면서 말입니다. 세상에서 제일 바보는 세상에 바보가 많다고 이야기하는 사람입니다.
 
어른은 아이를 바보로 여기고, 아이는 어른을 바보로 여깁니다. 노인은 젊은이를 바보 취급하고, 청년은 노인을 바보라 여깁니다. 선생은 학생을 바보로 여기고, 학생은 선생을 바보로 여깁니다. 남자는 여자를 바보로 여기고, 여자는 남자를 바보로 여깁니다. 진보는 보수를 바보로 여기고, 보수는 진보를 바보 취급합니다. 서로가 서로를 바보 취급하니 바보는 점점 늘어납니다. 온 세상이 바보 천지입니다.
 
아무리 살펴봐도 세상에 바보가 참 많습니다. 저렇게 바보가 많으니 세상에 갈등과 분노와 화와 멸시와 차별이 가득하겠지요. 주변을 따뜻하게 돌아보지 않으면 다른 사람이 그저 바보로 보일 겁니다. 저는 오늘 엄청나게 많은 사람을 바보라고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바보들의 세상입니다. 바보는 남을 바보로 여깁니다.

조현용 / 경희대학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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