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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기희의 같은 하늘 다른 세상] 떠나는 시간 붙잡고 울지 말기

이기희

이기희

시간은 고무줄이다. 늘어나고 줄어든다. 하루를 일년처럼 부지런히 사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일년을 하는 일 없이 지루하게 허송세월로 보내기도 한다. 허송세월(虛送歲月)은 가치 있는 일은 전혀 하지 않으면서 시간을 헛되이 보내는 모습을 말한다.
 
시계 추는 다른 방향으로 같은 속도로 움직인다. 추가 좌우로 흔들림에 따라 일정한 속도로 태엽이 풀리며 시곗바늘이 움직인다.
 
‘특별한 일은 없을 것 같다는 예감이/ 아침부터 밀려오는 하루의 시작(중략)/ 평범하게 씻고 평범한 식사를 하는/ 평범하기 짝이 없는 아침이 지나가면(중략)/ 똑딱거리는 시곗바늘에 맞춰/ 시계추마냥 왔다갔다 하는 하루들/ 하루가 모여 한달, 일년을 넘어가면/ 영원히 도망칠 수 없는 걸까’-유니의 ‘시계추’ 중에서
 
매일 반복되는 일상에 매달려 인생의 시계는 돈다. 인생의 시계는 수동이다. 멈추지 않게 하려면 태엽을 감든지 베터리를 갈아끼워야 한다.
매일 새벽 4시, 캄캄한 어둠을 뚫고 하루를 맞는다. 눈 여겨 보는 이 없어도 밤새 어둠 속에서 홀로 반짝이던 새벽별과 작별하고, 제일 먼저 가슴 스치는 바람과 악수한다. 어둠에 묻힌 잔디는 작은 진주알 같은 이슬을 품고 있다.
 
무겁지도 가볍지도 않는, 정갈하고도 고요한 하루의 시작에 가슴 떨린다. 꼭두새벽에 일어나 왠 수다냐고? ‘나이 들면 새벽에 깬다’며 아들은 나의 새벽 세러모니를 평가절하 한다. ‘나쁜 놈, 저도 늙어봐라.’ 하려다가 늦잠꾸러기로 어머니 애간장 태우고 지각 밥 먹듯 하며 벌 서던 생각이 나서 히죽이 웃는다.
 
절실하면 이루어진다. 성격은 바꾸기 힘들지만 버릇은 길들이기에 달렸다. 화랑과 창작예술센터 운영하고 아이 셋 건사하다 보면 해뜨고 질 때까지 내 시간은 일 분도 허락되지 않았다. 애들이 깊은 잠에 빠진 새벽이 유일한 피신처요 탈출구였다. 그 때부터 글 쓰고, 그림 그리는 내 ‘새벽 동화’가 시작된다.
 
‘인생은 고통과 권태를 오락가락하는 시계추와 같다.’ 쇼펜하우어의 말이다.
 
고통과 권태를 견디고 영롱한 새벽별 보고 폭풍이 지나간 하늘에 뜬 무지개를 만나는 사람은 슬퍼도 울지 않는다.
 
우리는 자기 편한데로 세상을 본다. 자기 생각대로 옳고 그름, 좋고 나쁨, 길고 짧음을 판단한다. 마음은 변덕쟁이다. 하고 싶은 일을 할 때에는 순식간에 지나가지만 힘든 시간은 유난히 느리게 흐른다.
 
한국행 비행 시간은 왜 그리 느리게 가는지. 아이폰 꺼내 보고 또 꺼내 봐도 병아리 눈물만큼 움직인다. 한국에 있는 시간은 번개처럼 지나간다. 옛 동무나 지인 만나 동대문에서 갈치솥밥, 냄비우동, 꼬마김밥. 옛날 짜장면, 추억의 오뎅국물 즐기며 먹방투어 하다보면 날벼락처럼 휘가닥 시간이 달아난다.
 
‘동짓달 기니긴 밤을 한 허리 베어내어/ 봄바람 이불 아래 서리서리 넣었다가‘ 님 오시는 밤 꺼내고 싶은 황진이 사랑은 에로틱하며 서정적이다.
 
사랑을 할까 말까 망설이는 동안 시간은 흘러간다. 안 하는 것보다 시작하고 후회하는 것이 낫다는 생각을 한다. 무엇을 언제부터 어디서부터 시작할 지 고민이면 지금 시작하면 된다. 시작의 종창역은 끝이 아니다.
 
쓰러지고 무너져도 떠나는 시간 붙잡고 울지 않기를. (Q7 Fine Art 대표, 작가)
 

이기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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