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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의 눈] 레트로 제품에 열광하는 이유

서재선 경제부 기자

서재선 경제부 기자

중학교 2학년 때다. 학생주임 선생님을 찾아가 애걸복걸했다. ‘시키는 건 뭐든 다 할 테니 제발 머리카락만큼은 자르지 않게 해달라’고. 2010년대 초 빅뱅, 2PM 등 남성 아이돌그룹 멤버들이 구레나룻(옆 머리)을 기른 헤어스타일을 고수하던 시기다. 목숨보다 소중한 구레나룻을 사수해야 했던 까닭에 ‘호랑이’ 학생주임의 지시에 반기를 들었던 것이다.  
 
당연히 ‘정신 덜 차렸다’는 쓴소리가 돌아왔다. 학생부를 나선 그 길로 학교 앞 미용실에 가 바리캉에 머리카락이 속절없이 잘려나간 건 덤이었다.  
 
젊은 세대는 유행에 민감하다. 가치관이 설익은 이들에게는 유행을 따라가는 것 자체가 목표가 될 수도 있다. 구레나룻이 없으면 세상이 끝날 것처럼 생각했던 나처럼 말이다. 젊은 세대가 유행을 생산하고, 정의하며, 선도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요즘 유행을 선도하는 Z세대(1990년대 중반~2010년대 초반 출생자)가 눈길을 돌린 아이템, 패션, 문화를 들여다보면 마치 시곗바늘이 거꾸로 돌아가는 것 같은 생각이 든다.  
 


최근 영국에서 출시한 바비폰이 대표적인 예다. 바비폰은 인터넷을 활용 기능이 제한되는 구식 폴더폰이다. 문자·메시지·사진촬영 등 휴대폰의 가장 기본적인 기능만 수행할 수 있는 한물간 물건이라는 의미다.  
 
이윤 추구가 목표인 기업이 구식제품을 내놓은 이유는 단순하다. 당연히 ‘돈’이 되기 때문이다. 노키아의 2022년 폴더폰 판매량은 전년 대비 100%나 급증했다. 첨단 기능을 탑재하지도 않았으며, 자랑 겸 내세울 것 하나 없는 이 저렴한 폴더폰에 대한 수요가 많이 늘어난 것이다.  
 
이뿐만 아니다. 같은 해 미국의 LP판 판매량은 1987년 이후 처음으로 CD 판매량을 앞질렀으며, 필름카메라, 카세트테이프 등의 수요 역시 폭발적이다. 영화 재개봉과 음원차트 역주행이 비일비재하며, ‘레트로’, ‘아날로그’, ‘향수’, ‘컴백’ 등 최근 유행 제품들 앞에는 과거지향적인 수식어가 붙는다. 젊은 세대는 청량한 음질보단 LP판 긁히는 잡음을, 고화소 사진보단 노이즈 가득한 필름 사진에 눈길을 더 준다는 얘기다.  
 
머리를 짧게 자르고 등교하라는 ‘반삭령’이 학교를 달굴 때마다 학생주임이 강조한 말이 있다. ‘학생은 학생 다울 때 가장 이쁘다’는 것이다. 이는 자라면서 겉치레에 치중하기 쉬운데 그보다는 내실을 다지는 데 충실하라는 말로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레트로 열풍은 내실과 본질의 중요성이 점차 부각되고 있음을 시사한다. 사진은 순간을 담는 게 본질이다. 음악은 되감을 수 없는 것이 매력이며, 휴대폰은 타인과 소식을 주고받는 게 주요 기능이다.  
 
하지만 스마트폰이 일반화된 시대에 태어난 Z세대는 사진을 찍으면 교정에 대한 걱정이 앞선다. 시간을 내서 하는 음악감상은 진부할 뿐이며, 만나서 교류하는 것보단 스마트폰을 통한 SNS 교류가 편한 세대다. 편의성에 길든 이들 젊은 세대에게 구식 문물은 불편한 것 투성이며, 진부함의 끝판왕인 셈이다.  
 
심심한 것 투성이인 물건들이 인기를 얻고 있다는 사실은 각도를 틀어 해석해 볼 수 있다. 사진을 찍을 땐 ‘찍는다’는 행위가, 음악 감상에는 ‘듣는다’는 행위, 대화엔 눈을 보고 ‘말한다’는 본질적인 행위가 주는 기쁨을 Z세대들이 발견했다고 볼 수 있다.  
 
이는 반삭을 거부하고 학생부를 찾아간 중학생 시절 나의 모습과는 대치된다. 겉치레에 눈이 먼 것과 행위가 주는 기쁨을 발견한 Z세대들 사이엔 차이가 있다는 의미다.  
 
Z세대의 레트로 열풍은 단순히 옛것에 대한 향수가 아니다. 과거로의 뒷걸음질은 더더욱 아니다. 이는 기술의 진보에 집착한 나머지 행위의 즐거움은 상실한 세태를 복원하는 과정이다. 되레 미래를 향한 발걸음으로 볼 수 있다.  

서재선 / 경제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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