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아침에] 가을이 오면
부모님 모두 작고하시고 한국엔 남동생 셋이 남아있습니다. 하나뿐인 누이는 멀리 미국에 이렇게 떨어져 산 지 오래입니다. 해마다 추석 즈음엔 한국에 나가거나, 못 가면 추석을 쇠시라고 어머니께 약간의 송금을 하곤 했죠.
어머니가 돌아가시니 세 동생은 부모님을 합장한 묘소에서 추도예배를 드리고, 오는 길에 식당을 정해 함께 식사하더군요. 요즘 세태에 맞는 방법인 듯합니다.
저는 세 동생 집에 LA갈비를 보내는 것으로 추석 선물을 대신합니다. 마침 제가 LA에 살아서 특산물을 보내는 기분이 듭니다. 몇 년 하다 보니 조카들도 미국 사는 고모는 으레 LA갈비려니 하고 좋아한다고 합니다.
올해도 추석 전에 주문하고 동생들에게 알렸더니 매번 받아먹기만 해 미안하다고들 한 마디씩 인사합니다. “괜찮아, 앞으로 몇 번이나 더 하겠니?” 하고 카톡을 쓰는데 갑자기 눈시울이 뜨거워지고 목울대가 울컥했네요. 페이스톡이 아니라 다행입니다. 마음 약한 누이의 모습을 보이고 싶지는 않습니다. 이런 맏이노릇도 길게 남지 않았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습니다. 공주에 계신 나의 스승님께도 몇몇 친구들에게도 가을맞이 겸 추석 인사를 했습니다.
하늘이 높아지고 생각이 깊어지는 계절이어서인지, 나이 탓인지, 인생의 가을에 다다랐다는 기분이 듭니다. 낙엽을 보며 조락과 쇠락도 생각하고 마지막 잎새도 생각하며 청승을 떨다가 작자 미상의 ‘내 인생의 가을이 오면’이라는 시를 읽습니다.
“내 인생에 가을이 오면 나는 나에게 사람들을 사랑했느냐고 물을 것입니다/ 그때 가벼운 마음으로 말할 수 있도록 지금 나는 많은 사람을 사랑하겠습니다.”
이 시는 설교자 찰스 스펄전의 묵상과도 일맥상통하여 신기합니다.
“사랑하는 사람이 언제나 곁에 있지 않다/ 사랑의 말이 있다면 지금 하라/ 친구가 떠나기 전에 장미가 피고, 가슴이 설렐 때 지금 당신의 미소를 보여주라/ 당신의 해가 저물면 노래 부르기엔 이미 때가 늦다/ 당신의 노래를 지금 불러라.”
대단한 서사가 아닌 ‘지금 사랑하라’는 평범한 말이 어렵지 않을 것 같아, 나머지 인생을 이렇게 살아봐야겠다고 새삼 다짐해 봅니다. 그 마음의 소리가 가을이 내게 전한 소리가 아닐까 합니다.
시절의 변화를 느끼고 계절의 소리를 들으려는 것만으로 우리는 우주의 질서와 교감하는 것이라는 말에 깊이 공감하는 가을날입니다.
이정아 /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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