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린 광장] 루브르 박물관의 비극
2024년 하계 올림픽이 열린 파리에는 명소가 많다. 오륜기가 휘황찬란하게 빛났던 에펠탑을 비롯해 샹젤리제의 밤거리를 아름답게 수놓은 개선문도 있다. 이들 못지않게 인기를 끄는 곳이 루브르 박물관이다. 루브르 박물관은 세계에서 가장 크고 유명한 예술 박물관이다. 이 박물관은 센 강 주변 약 40에이커의 부지에 세워졌다.
루브르 박물관은 원래 1204년 필립 2세 때 왕궁으로 지어졌다. 그 뒤 1541년 필립 5세 때 개축되었는데 나폴레옹 1세에 의해 국립박물관으로 명명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루브르 박물관에는 수많은 유명 미술작품이 보관되어 있다. 그 가운데 이탈리아와 네덜란드의 이름난 미술가들인 레오나르도 다빈치를 비롯해 렘브란트, 반 다이크, 라파엘 등의 작품도 있다.
루브르가 아름답고 이름난 곳이지만, 역사를 더듬어 올라가 보면 매우 슬픈 이야기가 스며있음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나도 파리 유학 전에는 432년 전 8월에 있었던 루브르에 얽힌 이야기를 몰랐으니까….
프랑스 국민은 95%가 가톨릭 신자다. 이는 신교가 발을 붙이지 못했음을 의미하며, 아울러 신교 신자가 많은 박해를 받았으리란 암시를 주고 있디. 프랑스에서는 구교와 신교가 큰 싸움을 여러 차례 했다. 16세기 당시 가톨릭의 귀즈 집안과 신교의 샤띠용 집안이 큰 싸움을 벌였는데, 이때 샤띠용 가의 꼴린니 장군이 양측의 화해를 시도했다. 그는 신교의 나봐르 앙리와 구교의 샤르르 9세의 누이 마가리뜨와 결혼을 주선했다. 드디어 1572년 8월 18일 결혼식 참석을 위해 양가의 귀족들이 파리에 모였다. 그런데 이 결혼식이 두 집안의 큰 싸움으로 번지는 비극이 될 줄 누가 알았겠는가! 11살 밖에 안된 샤르르 9세의 섭정을 맡은 까트린느가 꼴린니 장군의 영향력을 두려워해 그를 암살하려다 실패했다.
그 후 다시 암살 계획을 세웠는데 바로 성 바텔르미 축제일인 1572년 8월 24일 꼴린니 장군을 암살하고 이 축제에 모인 신교도 약 8000명도 학살했다. 그 가운데 약 3000명은 루브르 궁에서 떼죽음을 당했다. 바로 ‘성 바텔르미 대학살사건 (Le Massacre de la Saint-Barthelemy)’이다.
찬란한 빛 뒤에는 어둡고 슬펐던 옛 이야기들이 숨어 있음을 알게 된다. 지금도 많은 관광객이 루브르 박물관을 찾았을 것이다. 그런데 이 루브르의 마룻바닥에 수많은 신교 기독교인들이 흘린 핏자국이 서려있음을 아는 사람은 몇이나 될까.
윤경중 / 목회학박사·연목회 창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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