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산책] 문밖 서성이는 음악공부
어린 시절 집안 형편이 클래식 음악을 제대로 들을 정도로 넉넉하지 못했다. 작고 조악한 트랜지스터라디오로 방송 프로그램을 듣는 것이 고작이었다. 그나마 공부를 하면서 흘려들었고, 다른 식구들에게 폐가 되지 않도록 아주 작은 소리로 들었으니 음악을 제대로 감상했다고 도저히 말할 수 없다.
잘 알겠지만, 라디오 방송에서 흘러나오는 클래식 음악은 대체로 가볍고 짤막하고 달콤하고 유명한 곡들이다. 내가 듣고 싶은 음악을 택해서 들을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주는 대로 감사하며 받아먹어야 한다. 나도 별수 없이 그런 음악을 들으며 자랐다.
예를 들어, 바흐의 G선상의 아리아, 하이든의 종달새, 지고이네르바이젠, 유모레스크, 로망스, 사랑의 인사, 비발디의 사계 등등 이른바 ‘세미클래식’이라 불리는 음악들, 그것도 멜로디는 그런대로 익숙한데 작곡가나 곡명은 모르는 것이 대부분이었다. 그래도 클래식을 듣는다는 것만으로도 대견했다.
그러다가, 나이 조금 들어서 음악감상실이라는 별세계에 가서 커다란 스피커에서 웅장하게 울려 나와 실내를 가득 채우는 음악을 제대로 들었다. 그렇게 처음으로 감탄하며 빠져든 음악이 바로 ‘핀란디아’였다. 거대한 파도처럼 밀려오는 힘찬 소리에 압도되고 말았다. 바암∼ 바암∼ 밤 바아암∼ 밤바라밤바
그리고 항상 좋은 클래식 음악을 틀어주는 ‘학림다방’의 단골손님이 되면서 조금 더 깊이 들어가게 되었다. 그래 봤자, 들려오는 음악의 작곡가와 곡명을 겨우 아는 곡이 몇 개 생긴 정도이고, 라디오로만 듣던 때보다는 긴 곡을 들으며 참을성을 시험하는 정도였지만, 그래도 클래식 음악에 대한 관심과 공부 의욕은 한층 커졌다. 음악가에 대한 책이나 글을 찾아 읽기도 하고, 어쩌다 아주 어쩌다 음악회라는 엄숙한 자리에 가보기도 하고….
하지만 공부는 생각과는 달리 지지부진했고, 지금도 여전히 문간에서 안타깝게 어슬렁거리는 초보자 수준에 머무르고 있다. 음악공부라는 게 참 어렵다. 열심히 새로운 음악을 찾아 듣고 더 넓은 공부를 해야 할 텐데, 귀에 익은 편안한 곡만 거듭 듣게 된다. 문학작품은 여러 번 읽는 경우가 많지 않지만, 음악은 반복해서 듣는 것이 기본이다. 그것도 취향에 맞는 곡만 듣는 편식이니 진도가 잘 나갈 리 없다. 늘 제자리걸음이다. 뚜렷한 한계를 느낀다.
그래도 내 경우에는 라디오 프로그램 진행자로 일하면서 공부를 한 것이 큰 다행이었다. 특히, 평생 클래식 음악과 함께 살아오신 위진록 선생님을 모시고 방송을 진행하면서 많은 공부를 할 수 있었다.
냉정하게 생각해보면, 음악뿐 아니라 다른 예술 분야에서도 내가 제대로 알고 감상한 부분은 지극히 작은 한 귀퉁이였다. 음악 감상은 세미클래식에 그쳤고, 문학은 세계 명작을 다이제스트 판으로 읽은 수준이었다. 그저 깊이보다는 넓이에 집착하여, 이것저것 문 앞에서 서성거리는 짓만 되풀이해왔다. 무엇 하나 목숨을 걸고 제대로 해본 일이 없다. 그러니 ‘문화잡화상’이라는 별명이 제격인 것 같다. 인제 와서 후회한들 소용없는 일이지만….
아니다, 이제부터라도 좀 더 파보자. 이어령 선생처럼 일단 파기 시작했으면 물이 나올 때까지 최선을 다해서 파는 끈기가 필요하다. 좋은 격언을 주문처럼 외운다. “백 권의 책을 읽으려 애쓰기보다 좋은 책 하나를 백번 읽으라.”
그렇다, 첫사랑 ‘핀란디아’를 백 번 진지하게 들어보자. 같은 음악이라도 다르게 들리며 물이 콸콸 쏟아질지도 모르지! 엄숙한 표정으로 듣는다. 바암∼ 바암∼ 밤 바아암∼ 밤바라밤바밤바!
그런데 왜 자꾸 밤을 보라는지 그걸 모르겠다. 밤 봐라! 밤 봐, 밤 봐!
장소현 / 시인·극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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