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 우리말] 잘 가르치는 방법
남방불교 앙굿따라니까야(빠알리 경)의 다섯의 모음을 보면 가르침에 대한 논의가 나와 있어서 교육에 관하여 생각할 점을 줍니다. 교수법에 관한 이론으로 삼아도 좋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불교에서 언급하고 있는 다섯 가지 항목을 현대의 교육과 연관해서 깊이 생각해 볼 기회로 삼고자 합니다.부처의 제자인 아난다 존자가많은 재가자들의 대중에 둘러싸인 우다이 존자가 설법을 하는 것을 보고 세존께 “세존이시여, 우다이 존자가 많은 재가자들의 대중에 둘러싸여 법을 설합니다.”라고 이야기하자 세존께서 아난다에게 법을 남에게 설하기 전에 안으로 다섯 가지 법의 준비, 확립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하고 있습니다. 그 다섯 가지는 설법에서뿐 아니라 우리의 일상적인 교육에서도 지침이 될 수 있을 겁니다.
첫 번째로 순차적으로 가르침을 설한다는 생각을 해야 한다는 겁니다. 순차적이라는 말은 가르침의 순서입니다. 무엇을 먼저 가르쳐야 하고 무엇을 나중에 가르치는 것이 좋은지 알아야 한다는 겁니다. 전체적인 그림을 그리는 것이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교육과정의 설계, 교수요목의 확정이 이 단계에 포함될 수 있을 겁니다. 생각해 보면 가르침의 순서도 쉬운 일이 아닙니다. 시작이 어려워 아예 뒤까지 가지 못하는 경우도 많습니다. (교육과정)
두 번째는 되어감, 방편을 보면서 가르침을 설하리라 생각하면서 남에게 법을 설해야 한다는 겁니다. 이 말은 학습자에 대한 이해가 선행되어야 함을 의미합니다. 학습자의 수준, 단계에 맞게 가르침의 방법과 내용도 달라져야 합니다. 학습자의 수가 많은 경우에는 더 많은 고민이 필요합니다. 저는 수업은 학생 수만큼 있다고 생각합니다. 학생을 집단으로 취급해서는 안 된다는 의미입니다. 모든 학생은 개인입니다. 학습자를 모르는 교사가 제대로 가르치기는 어려울 겁니다. 늘 반성을 주는 부분입니다. (학습자 이해)
세 번째는 연민으로 가르침을 설하라는 것입니다. 이 말은 다른 말로 표현하자면 사랑이 있어야 한다는 말입니다. 제대로 알지 못해서 고통을 받는 사람을 연민의 눈으로 바라보고 실천해야 합니다. 종교적인 장면이라면 이 말이 더 깊게 다가올 겁니다. 하지만 교육의 현장에서도 꼭 필요한 덕목입니다. 우리가 자주 놓치는 장면이기도 합니다. 포기하고 싶은 학습자가 많고, 학습자의 모습이 이해 안 되는 순간이 너무나 많기 때문에 연민은 포기로 바뀝니다. 괴로운 순간입니다. (학습자에 대한 사랑)
네 번째는 욕심을 가지지 말고 설하라는 겁니다. 달리 설명하는 글을 보면 물질적인 것을 바라지 말라고 합니다. 가르침에 물질이 관여되면 다른 목적이 선행하게 되는 겁니다. 저는 모든 강의의 최우선 지점은 배우고 싶은 사람에게 기쁘게 가르쳐야 한다는 점입니다. 다른 조건을 따지는 순간 가르침은 그르침이 됩니다. 배우고 가르치는 것은 기쁜 일입니다. 자연스러움이 가르침의 기본입니다. (욕심 없는 가르침)
다섯 번째는 자신과 남을 상처받게 하지 말아야 한다는 겁니다. 자칫하면 가르침은 상처가 됩니다. 말도 행동도 가르침에서는 흉기가 될 수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이는 남에게만 향하는 흉기가 아닙니다. 이는 가르치는 사람을 향하기도 합니다. 그래서 더 위험합니다. 가르치면서 스스로를 베어버릴 수 있기에 더 조심하여야 합니다. 칭찬과 멸시는 모두 가르침에서 위험한 요소입니다. 특히 자신을 향한 너그러움과 남을 향한 엄격함은 균형을 잃고 나락으로 떨어뜨리기도 합니다. (서로를 존중하는 가르침)
위에서 설명한 다섯 가지는 모두 위험 요소를 드러내고 있습니다. 가르침을 즐겨하지 말라는 말도 있습니다. 가르치지 말라는 게 아니라 잘못 가르쳤을 때의 위험성을 지적하는 것입니다. 종교의 가르침은 현실의 가르침과는 차이가 있을 겁니다. 하지만 기본적인 마음은 같다고 생각합니다. 잘 준비하여야 가르침이 상처가 되지 않습니다.
조현용 / 경희대학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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