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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OCUS] 말 더듬고 동문서답…TV토론 거센 역풍에 ‘백기’

[바이든 낙마 결정적 계기 5가지]
2년전 사우디에 증산 요구 실패
이·하마스 전쟁 해결책 못 찾아

무대서 넘어지고 말 실수 계속
외국 지도자들 이름 잘못 호칭

토론이 사퇴론에 기름 부은 격
트럼프 피격사건도 악재 작용

조 바이든 대통령의 사퇴 여론 확산에 결정적인 역할을 했던 지난달 27일 대선후보 TV토론 모습. [로이터]

조 바이든 대통령의 사퇴 여론 확산에 결정적인 역할을 했던 지난달 27일 대선후보 TV토론 모습. [로이터]

조 바이든 대통령이 21일 2024년 대선 민주당 후보직에서 사퇴했다. 지난해 4월 25일 X(옛 트위터)를 통해 대선 출마를 공식 선언한 지 1년 3개월 만이다. “트럼프를 이길 수 있는 최고의 후보는 나”라는 자신감 속에 대선 레이스를 시작했지만, 재임 기간 이어진 ‘두 개의 전쟁’과 인플레이션 위기가 그의 발목을 잡았다. 역대 최고령 대통령(81세)으로서 제기된 인지력·건강 우려는 불식되기는커녕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과의 TV토론에서 폭발했다. 바이든을 후보 사퇴로 이끈 결정적 장면 5가지를 꼽아봤다.
 

▶“주먹 인사만 해주고 …”
 
지난 2022년 7월 15일 바이든은 사우디아라비아 제2의 도시 제다에 있었다. 마중 나온 무함마드 빈살만 사우디 왕세자와 주먹으로 인사했다. 몇달 전만 해도 상상하기 어려운 장면이다. 바이든은 2018년 튀르키예 이스탄불 사우디 영사관에서 피살된 사우디계 미국 언론인 자말 카슈끄지 살해 배후로 빈살만을 지목하고 강하게 비판해왔다. “사우디를 국제적 왕따로 만들겠다”고도 다짐했다.
 
그랬던 그가 취임 후 처음으로 사우디를 직접 찾은 건 기름값 때문이었다.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국제유가는 배럴당 100달러를 웃돌고 미국 내 유가도 급등했다. 이 여파로 2022년 6월 미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41년 내 최고치인 9.1%까지 치솟았다. 급한 불을 끄려 바이든은 ‘독재자와 손잡는다’는 국내 비판에도 석유수출국기구(OPEC)의 실질적 리더인 빈살만에 석유 증산을 부탁했다.
 
시도는 실패로 끝났다. 두 달 뒤 OPEC과 주요 산유국 간 협의체인 OPEC+는 9월 원유 증산량을 하루당 10만 배럴로 정하며 7~8월 증산량(64만8000배럴)보다 더 줄였다. “주먹 인사만 하고 뺨 맞은 셈(CNN)” “정치적 모욕(뉴욕타임스)”이란 지적이 쏟아졌다. “인플레이션도 못 잡고, 전쟁도 못 끝낸다”는 바이든에 대한 비판은 이때 시작됐다.
 

▶“제노사이드 조”
 
지난해 10월 무장정파 하마스의 무차별 학살로 시작된 이스라엘·하마스 전쟁은 9개월 넘게 이어지고 있다. 3만 8000명이 넘는 가자지구 주민이 숨지고, 기아 등 인도주의적 위기도 심각하지만 하마스 궤멸을 공언한 이스라엘은 공격을 멈추지 않고 있다.
 
휴전을 요구하는 국제사회 목소리가 크지만 바이든의 태도는 어정쩡했다. 군사작전을 중단하고 휴전 협상에 나서라는 요구를 하면서도 이스라엘에 무기는 계속 공급하고 있다. 11월 대선 때문이었다. 전통 지지층인 무슬림, 반전 성향 유권자도 중요하지만 선거자금의 ‘큰 손’인 유대계 유권자 눈치도 봐야 했다.
 
바이든의 ‘위험한 줄타기’는 역풍을 맞았다. 4월 뉴욕 컬럼비아대에서 시작된 대학가 친 팔레스타인 시위에선 “바이든은 ‘제노사이드 조’(대량학살자 조)” “바이든과 트럼프의 차이를 못 느끼겠다”는 말이 나왔다. 트럼프와 공화당은 “바이든이 나약해 중동 상황이 악화됐다”고 비판했다. ‘집토끼’ 지지층도 잃고 표심 확장에도 실패하는 최악의 상황에 직면했다.
 
 
▶젤렌스키에 “푸틴 대통령”
 
지난해 6월 콜로라도 공군사관학교 졸업식 행사장. 졸업장 수여 후 이동하던 바이든이 갑자기 넘어졌다. 경호원 등의 부축을 받고 일어나 자리에 앉은 바이든은 당혹감을 감추지 못했다.
 
바이든의 ‘꽈당’ 넘어짐은 처음이 아니다. 2021년 3월 대통령 전용기 에어포스원 계단을 오르다 발을 헛디뎌 넘어졌고, 2022년 6월에도 자전거를 타다 페달 클립에 발이 걸려 넘어졌다.
 
말실수도 잦았다. 지난 2월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을 프랑수아 미테랑 전 대통령으로 불렀다. 5월엔 “한국 대통령 김정은을 위한 그(트럼프)의 러브레터들”이라며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을 한국 대통령으로 칭했다. 급기야 지난 11일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정상회의에선 카멀라 해리스 부통령을 “트럼프 부통령”,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을 “푸틴 대통령”으로 부르는 치명적 실수를 저질렀다.
 

▶‘폭망’ TV토론  
 
지난달 27일 열린 바이든과 트럼프의 TV토론은, 바이든으로선 ‘대참사’였다. 토론 전만해도 양측 기세는 팽팽했다. 뉴욕타임스(NYT)가 이틀 전 분석한 전국 여론조사 지지율 평균은 46% 동률이었다.
 
바이든은 토론 시작 직후 이상한 낌새를 보였다. 잘 들리지 않을 만큼 말에 힘이 없었고, “어, 음”을 연발하며 더듬었다. 국가부채에 대한 트럼프 질문에 “메디케어(의료보험)를 이겼다”고 동문서답했다. 트럼프는 놓치지 않고 “방금 본인이 무슨 말을 했는지 모르는 것 같다. 바이든이 메디케어를 망가뜨렸다”고 받아쳤다.
 
토론 직후 실시한 CNN 여론조사에서 트럼프가 잘했다는 응답은 67%로, 바이든(33%)을 ‘더블 스코어’로 따돌렸다. 4년 전인 2020년 9월 첫 토론 직후 CNN이 실시한 여론조사에서 바이든이 잘했다는 응답이 60%였고, 트럼프가 28%였던 것과 정반대 결과다. 이후 민주당 내부에선 후보 교체론이 봇물 터지듯 쏟아졌다.
 

▶주먹 쥔 트럼프 사진
 
쐐기를 박은 건 트럼프 암살 미수 사건이다. 토머스 매슈 크룩스(20)는 지난 13일 오후 6시 12분 펜실베이니아 버틀러의 한 공장 건물 옥상에서 AR-15 소총 방아쇠를 당겼다. 120m 떨어진 곳에서 유세하던 트럼프를 향해 탄환이 날아갔다.
 
트럼프가 잠시 고개를 돌리는 찰나, 총알은 그의 귀를 스쳐 지나갔다. 트럼프 지지자 1명이 숨지고 2명이 중상을 입었지만, 트럼프 생명엔 지장이 없었다. 경호원들이 자신을 감싸며 호송을 시도하는 중에도 트럼프는 청중을 향해 “싸우자”고 세 차례 외쳤다.
 
귀에 피가 나는 가운데 성조기를 배경으로 주먹을 불끈 쥔 트럼프의 사진은 이후 지지자에게 영웅 이미지를 심어줬다. 공화당 일각에선 “선거는 사실상 끝났다”는 기류까지 번졌고, 민주당 내에서 바이든 하차론은 더욱 거세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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