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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 믿음] “하나님 여기 계시니…”

아이티를 다녀왔다. 공항이 폐쇄되었다가 다시 문을 열고, 항공기들이 다니기 시작해서, 4개월 만에 아이티 땅을 밟았다. 공항 옆에 유엔에서 파견한 케냐 경찰 막사가 설치되고 거리에는 아직 팽팽한 긴장이 감돌기는 하지만 뜨거운 햇살 아래 많은 사람이 길거리 장사에 나서서 사람 통행이 조금이라도 있는 곳은 붐비고 있었다.  
 
갱들의 위협으로 비행기가 오 가지 못하던 시간 동안 아이티 수도 포토프린스는 고립되어 있었다. 도미니카 공화국에서 보내는 헬리콥터 몇 대가 갱이 점령한 도시를 탈출하는 유일한 수단이었고, 그마저 금방 끊어지고 말았다. 그 고립된 시간 동안, 사람들은 두려움에 떨어야 했고, 봉투에 담아 파는 쌀이나, 길거리 행상이 파는 달걀, 플랜틴 정도로 연명해야 했다. 우리가 후원하고 있는 고아원도 식량이 넉넉하지 못하기는 마찬가지였다. 아이들의 숫자는 늘어나고, 날이 다르게 자라는데 한정된 식량으로 한 달 한 달을 간신히 버텨내야 했다.
 
이번 방문에서 살렘고아원 원장인 쟌 목사를 선교센터에서 만났다. 16년째 후원하며 이제는 친구처럼 지내는 그에게 미안하고 슬픈 마음으로 어떻게 지냈느냐고 물었다. 그 사이 잔주름이 확 늘어 더 늙어 보이는 쟌 원장은 거침없이 손가락으로 하늘을 한 번 가리키고, 땅을 한 번 가리키더니, “하나님이 여기 계시니…” 했다. 두려움과 배고픔과 슬픔의 시간 동안 하나님이 계셨다고 했다.
 
우리는 늘 기도한다. 하나님께서 아이티를 평화롭게 해 주시기를, 아이티 사람들이 갱들의 폭력, 정부의 무능과 부패에서 벗어날 수 있기를 기도하고, 더없이 삶이 고단한 고아들을 위해 기도한다. 하나님께서 아이들의 배고픔을 덜어주시고 공부할 수 있게 해주시기를 간절히 기도한다. 아이들에게 적절히 도움이 전달될 수 있기를 기도하고, 아이들이 어떻게든 건강하게 자라기를 기도한다.
 
하지만 우리의 기도는 늘 의심받았다. 아이들이 꿈을 잃지 않고 자라기에는 나라가 너무 황폐했다. 사실은 후원도 조금씩 줄어드는 고아원 지원은 힘에 부치기도 했고, 아이티는 점점 더 상황이 나빠지고 있기도 했다. 끝을 모르는 고난이 우리의 믿음을 흔들었다. 매일 소망을 꿈꾸자고 하며 기도한다는 우리마저 먼 미래의 아이들을 상상할 수 없었다.
 
우리가 하는 것은 사역이 아니라 사랑이다. 소망을 잃은 것 같은 거친 땅 아이티에서 사는 ‘고아’를 사랑하는 일이다. 고아는 하나님이 아버지가 되어주신 아이들이라고 믿고 있기에 그 사랑은 몹시 거룩하고 숭고하다고 믿었다. 그런데 아무리 기도해도, 아무리 애를 써도, 아무리 힘든 과정을 거쳐 아이들을 만나고 안아주고 사랑을 나누어도 하나님께서 얼굴을 돌리신 듯 상황이 점점 나빠진다고 여겼다.
 
그때 쟌 목사를 통해 들었다. ‘하나님 여기 계시니’. 하나님께서는 아들 예수를 십자가에서 내려주지 않으시고 십자가에 못 박힐 때 거기 계셨다. 우리가 하나님께 얼른 아이들을 도와달라고 기도할 때, 하나님은 거기 계셨다. 유다 백성이 바벨론 포로가 되어 고난을 겪을 때, 그발 강가에서 에스겔을 만나주신 하나님은 우리의 기도를 외면하지 않으시고, 아이티 땅 두려움과 슬픔과 배고픔이 가득한 고아원에 아이들과 함께 계셨다.
 
예수님께서는 이 땅에 임마누엘로 오셨다. 임마누엘은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다’라는 뜻이다. 하나님은 우리와 함께 계시는데, 우리는 고난 가운데 자주 ‘여기’ ‘지금’ 함께 계신 하나님을 잊고 산다.

조항석 / 목사·더 코너 인터내셔널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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