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가 죽인 ‘경아’ 커다란 사회적 반향 일으켜
중앙일보 창간 50주년
개봉 50년 명작 시리즈
격변의 70년대 통속적 묘사
한국 영화 부활 이끈 흥행작
젊은 여성 삶 다룬 영화 봇물
70년대 한국영화계는 창조성 결여로 60년대의 부흥기를 이어가지 못하고 있었다. 70년대 시대적 상황을 통속적으로 그려낸 영화 ‘별들의 고향’은 커다란 사회적 반향을 불러일으키며 주목을 받았다. 한국영화는 ‘별들의 고향’의 개봉을 계기로 침체기를 끝내고 다시 대중들의 호응을 받기 시작했다.
영화 검열관인 아버지 덕에 신필림에 입사, 신상옥의 조감독으로 활동하던 이장호는 1973년 어린 시절 친구이며 서울고 동창인 소설가 최인호를 찾아가 당시 최고의 인기를 누리던 신문 연재소설 ‘별들의 고향’을 영화화하겠다고 선언한다. 결국 그의 천재성과 돌파력은 이듬해 신인 감독의 데뷔작으로서는 전무후무한 기록을 세운 영화 ‘별들의 고향’을 탄생시킨다.
‘별들의 고향’은 시간순으로 이어지지 않고 화가 문오(신성일)가 호스티스 경아(안은숙)를 만나면서 경아의 과거 남자들(윤일봉, 하용수, 백일섭)과의 관계를 플래시 백으로 처리하는 방식으로 진행된다. 이와 같은 비연대기적 진행 방식은 당시 영화계에서는 매우 혁신적인 시도였다.
착하고 순수하기만 한 경아는 남자들에게 무척 의존적인 모습으로 하루하루를 살아간다. 그러나 그녀는 4명의 남자들의 품을 전전하며 버림받고 자학과 술로 세월을 보낸다. 눈 내리는 어느 날, 산속을 헤매다 수면제를 먹고 눈밭에 쓰러져 영원한 잠 속으로 빠져들어간다.
경아의 불행은 가부장적 남성중심의 사회 구조와 무관하지 않다. 그녀를 죽게 한 건 4명의 남자들이었지만 어쩌면 대한민국의 모든 남성들이 그녀를 죽음으로 몰고 갔을지도 모른다. 작가 최인호는 ‘도시가 죽이는 여자의 이야기’로 자신의 소설을 표현했다. 경아는 작가의 말대로 남성적 문화, 남성적 폭력성을 상징하는 도시의 희생양이 되어 버렸다.
영화는 ‘나 그대에게 모두 드리리’(이장희), ‘나는 19살이에요’(윤시내) 등의 노래들이 삽입되어 빅히트를 기록했고 한국영화 사상 최초로 영화 음악만을 따로 모아 독립 앨범으로 출시했다. 이후 OST 앨범 붐이 일기 시작했다.
‘별들의 고향’ 이후 젊은 여성의 삶을 다루는 영화들이 대거 발표됐다. 그 흐름은 ‘영자의 전성시대’(1975), ‘겨울여자’(1977)로 이어졌다. 그리고 ‘호스티스 멜로드라마’의 효시가 되어 1980년대 ‘애마부인’이 등장하는 시기까지 지속됐다.
비운의 여주인공 경아 역에 아역배우 출신 안인숙이 본격적인 성인 연기를 시도하며 16년 연상의 수퍼스타 신성일과 알몸을 드러내는 베드신을 촬영, 노출 연기를 꺼리던 당시 영화계에 가히 획기적인 시도로 받아들여졌다.
김정 영화평론가 ckkim22@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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