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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린광장] 마우이섬을 다녀오다

윤재현 전 연방공무원

윤재현 전 연방공무원

아들네 식구와 두 딸과 마우이섬을 다녀왔다. 나의 구순 생일을 기념하는 가족 휴가였다. 일명 ‘골짜기 섬(The Valley Island)’으로 불리는 이 섬은 볼거리가 많았다. 지도를 보면 지형이 사람의 상반신과 비슷하다. 머리 정상에 위치한 카파루아의 호텔로 가려면 화마가 할퀴고 지나간 라하이나를 지나가야 했다.  
 
고속도로 옆 철조망에 걸려있는 희생자의 사진을 보기가 민망했다. 거의 부녀자들이다. 남자는 노인뿐이었다. 작년 8월 100여 명이 희생된 화재는 ‘잘못될 수 있는 일은 결국 잘못되게 마련(if anything can go wrong, it will)’ 이라는 머피의 법칙이 현실화된 것이다.    
 
라하이나는 건조 지대다. 겨울 우기에 자란 풀이 여름 건조기에는 말라 불쏘시개가 됐다. 강풍이 불었고, 떨어진 전깃줄에서 발생한 불꽃으로 인해 불이 붙었다. 비상 대피령 경보도 울리지 않았다. 비상 대책 책임자는 회의 참석차 호놀룰루에 머물고 있었다고 한다. 순식간에 벌어진 천재와 인재의 결과다.
 
마우이섬 해안선은 거의 암벽으로 둘러싸이고, 드문드문 트인 모래밭이 해수욕장이다. 남가주의 모래사장과 달리 발을 디디기 불편할 만큼 울퉁불퉁했다. 몸을 가누기 힘들었다. 몇 미터 수영하니 숨이 차서 나왔다. 몇 시간을 바닷물에 떠 있는 수영 실력이었는데….  
 
집 잔디밭에서 벼룩에 물린 정강이를 몇 번 바닷물에 담갔더니 가려움증이 없어졌다. 이곳은 태평양 한가운데의 청정지역이다. 찌들은 노욕(老欲)과 울퉁불퉁 솟아나는 명예욕을 배추처럼 소금물에 절였다. 그래도 뻣뻣하다. 아직도 입을 열면 내 자랑 일변도다. 얼마큼 더 절여야 하나.  
 
다음 날 하와이 원주민의 성지 이야오 골짜기를 방문했다. 푸른 밀림 속에 송곳처럼 올라간 1200피트의 산봉우리는 기묘하고 신비스러웠다. 이 골짜기에서 1790년 카메하메하 대왕 군사가 마우이 군사를 격파한 전투가 벌어졌고, 계곡은 시체로 뒤덮혔던 곳이라고 한다.  
 
느닷없이 작은 키에 까무잡잡한 피부색의 원주민이 두 손을 들고 주문을 외우기 시작했다. 알아들을 수 없는 말로 흥얼거렸다. 그 산골짜기에서 죽은 양쪽 용사의 혼을 달래는 주문인 것으로 짐작했다. 나중에 구굴로 검색해 보았다. ‘쿠라 카히레 아카 나우 하아하아(겸손한 사람은 조심해서 걷는다,  다른 사람을 다치게 하지 않기 위해서). 헤 케하우 호 오마 에마 이케 아로하(사랑은 말끔히 씻어주는 이슬과 같다). 아 후이 하우(다시 만날 때까지).’
 
마우이 섬에서 빼놓을 수 없는 절경은 피피와이 숲이다. 옆으로 개울물이 흐르고 아름드리 번얀 보리수와 푸는 대나무 숲을 가로지르는 2마일의 축축한 오솔길을 따라서 올라가면 와이모쿠 폭포가 전개된다. 높이 400피트의 웅대한 폭포에 입이 벌어진다. 대나무 숲속에 폭포가 숨어있었다.  
 
호텔로 가는 길에 시장에 들르니 마우이 산 대나무 젓가락이 있다. 한 묶음 사 집에서 사용하던 중국산 대나무 젓가락과 교체했다. 이 젓가락으로 음식을 집을 때마다 푸르고 청순한 마우이섬 대나무 숲이 떠오른다. 

윤재현 / 전 연방정부 공무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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