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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은 차별을 넘을까? 질문은 아직 유효하다

중앙일보 창간 50주년
개봉 50년 명작 시리즈

<3> 불안은 영혼을 잠식한다
타인종 간 사랑에 전후 독일 파시즘 잔재 통찰
낯익은 멜로에 브레히트의 낯선 거리감 대입

올해 개봉 50주년을 맞이한 '불안은 영혼을 잠식한다' 멜로드라마라는 장르를 통해 파시즘의 잔재, 차별, 불관용이라는 시대적 쟁점을 심도 있게 파헤치며 오늘날에도 관객들에게 깊은 감동을 선사한다. [New Yorker Films]

올해 개봉 50주년을 맞이한 '불안은 영혼을 잠식한다' 멜로드라마라는 장르를 통해 파시즘의 잔재, 차별, 불관용이라는 시대적 쟁점을 심도 있게 파헤치며 오늘날에도 관객들에게 깊은 감동을 선사한다. [New Yorker Films]

“행복은 항상 달콤하지는 않다.”
 
1974년 개봉한 라이너 베르너 파스빈더 감독의 영화 ‘불안은 영혼을 잠식한다(Ali: Fear Eats the Soul)’에 나오는 대사다.
 
‘불안’은 안전하지 않다는 뜻. 어원은 목이 졸려서 숨이 막혀 어쩔 줄 모르는 상황이다. 불안은 힘든 상황이지만 불안을 감수하고 새로운 세계로 발을 디뎠을 때 진정한 변화가 시작된다. 미국이 흑인 노예 해방을 선언한 지 161년, 독일이 히틀러로부터 해방된 지 79년이 지났지만, 아직까지 인종, 성별, 성적 지향, 장애 등 다양한 형태의 차별이 만연하다. 해방 뒤에는 많은 이들의 피와 눈물뿐만 아니라 차별로 얼룩진 상흔이 남아있다.  
 
‘불안은 영혼을 잠식한다’는 멜로드라마라는 장르를 통해 파시즘의 잔재, 차별, 불관용이라는 시대적 쟁점을 심도 있게 파헤치는 작품이다.  
 
칸영화제에서 비평가상을 받은 ‘불안은 영혼을 잠식한다’는 빔 벤더스, 알렉산더 클루게 감독 등의 작품과 더불어 뉴 저먼 시네마의 대표작으로 꼽힌다. 이 영화는 15일이라는 짧은 촬영 기간에도 불구하고 시나리오, 미장센 등 모든 면에서 높은 완성도를 보여준다. 특히,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독일 사회의 민족주의적 위선을 날카로운 시선으로 비판했다는 점에서 높은 평가를 받고 있다.
 
추적추적 비가 오는 어느 날 밤 아랍 음악이 흘러나오는 한 바에 60대의 에미가 들어온다. 예기치 못한 에미의 등장에 바 안에는 정적이 흐른다. 그러다 우연히 모로코 출신 외국인 노동자 알리와 함께 춤을 춘 것을 계기로 둘은 사랑에 빠진다. 이를 통해 에미와 알리는 서로 다른 배경을 가지고 있지만, 사랑이라는 강렬한 감정으로 사회적 장벽과 차별을 뛰어넘을 수 있다는 메시지를 전달한다.
 
하지만 동시에, 사랑만으로는 모든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는 현실을 보여주기도 한다. 파시즘의 잔재가 녹아있던 시기에 에미의 자식, 이웃, 직장 동료 모두가 그녀를 비난한다. 특히, 에미는 외국인 노동자와 사랑에 빠진 ‘타락한’ 여성으로 사회로부터 배척된다. 영화는 사회적 약자들이 겪는 차별과 억압의 현실을 생생하게 그려내며 관객들에게 깊은 질문을 던진다. 파스빈더 감독은 2차대전 이후 파시즘적 반유대주의가 일부 해소됐다고 여겨질 때, 유대인에 대한 증오가 아랍인, 외국인 노동자, 이민자들로 옮겨가고 있는 것을 캐치해냈다.
 
사랑으로 뭐든지 극복할 수 있다고 믿었지만 뿌리 깊은 편견은 사랑을 집어삼키고 그 속에 싹튼 불안은 영혼을 잠식하고 관계는 위태로운 상황에 빠진다. 사랑의 본질은 변하지 않지만, 사상과 정치이념은 바뀔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에미는 알리를 사랑했지만, 어느 순간부터 본인도 다른 사람들에게 옮아 파시즘적 물결에 휩쓸려가고 있었다. 한참 후에 서로에 대한 진심을 확인하지만 알리는 병에 걸려있었고 에미가 알리의 병석을 지키는 모습으로 영화는 끝이 난다. 영화는 결말이 비극인지 희망인지에 대한 정답을 제시하지 않는다. 오히려 관객들이 이 영화를 통해 스스로 생각하고 판단하도록 유도한다. 따라서, 그들의 사랑이 앞으로도 계속될지 위태로울지는 미지수다.  
 
이 작품은 독일의 시인이자 극작가인 베르톨르 브레히트의 ‘거리두기 이론(소격이론)’을 영화에 담아냈다. 거리두기 이론이란 관객과 작품 사이의 물리적 거리와 심리적 거리를 동시에 조절하여 무대 위에서 벌어지는 일들이 허구라는 것을 인식시켜 극을 비판적으로 보게 하는 것을 뜻한다. 카메라 무빙, 관찰자의 시선 쇼트 삽입, 수평 트래킹 등을 활용하여 관객들로 하여금 영화 속 장면이 허구임을 일깨우고, 동시에 프레임 밖의 현실로 시선을 돌리게 한다. 이를 통해 파스빈더 감독은 관객들에게 영화를 통해 현실은 해피 엔딩이 아니라는 것과 아직도 파시즘 잔재가 만연하다는 것을 바라보도록 유도한다.
 
파스빈더는 감독은 “사랑이란 사회적 억압을 극복하기 위한 최선의, 가장 교활한, 가장 효과적인 수단이다”라고 말했다. 양성애자였던 그는 어쩌면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사랑의 힘이 편견과 무관용에 맞설 수 있다는 것을 가장 가까이서 느낀 인물일지도 모른다. 불안은 영혼을 잠식시킬 수 있지만, 오히려 사랑을 더욱 강하게 만들어 주기도 한다.

정하은 기자 chung.haeun@korea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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