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마당] 죽음의 매뉴얼
계절이 흘러가고세상이 흘러가고
도시가 흘러간다
평생 걸어서 쌓아 올린 발자국이
모두 시가 된다
삶은 온통 시다
날마다 시의 행간을 서성인다
여기까지 왔다
아픔과 슬픔을 먹고 단단해진 심장
이제 더 이상 견디기에는
너무나 헐거워진 슬픔
이 슬픔을 꽃피우는 것이 우리가 할 일
네가 피워낸 꽃은 충분히 사랑스러워
이제 너는 다른 꽃봉오리를 찾아내는 일만 남았어
무섭게 굳어있던 우리 사이의 경계가
무너지고 녹아내리는 소리가 들려
삶은 묻는 만큼만 답을 준다지
이 세상 떠날 때
너는 무엇을 남길까
파장으로 겹친 이들과의 기억
그것도 잠깐이야
아름답고 소중한 기억도
우리 아들은 반쯤 기억하고
손주는 반의반쯤 기억하고
아들의 손주는 까마득할 거야
이게 죽음의 매뉴얼이야
정명숙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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