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기희의 같은 하늘 다른 세상] 복수의 칼날은 사랑으로 무뎌진다
수비가 없는 데도 골대 앞에서 공을 찰까 말까 망설이고 돌아서서 용기 없음을 후회한다. 어차피 인생은 선택이다. 막다른 골목에서 죽을지 살아 남을지를 고민하지만 안 죽으면 살아남는다. 선택은 양자 택일이다.
사랑이 바람처럼 어깨를 스쳐가도 두 손 벌려 잡을 생각을 못한다. 이별이 두려워 돌아서 눈물 떨구며 그대를 떠나 보낸다. 이별의 슬픔은 밤안개처럼 무릎을 적신다.
세상에 가장 무서운 것은 집착이다. 명예 돈 물욕 사랑이 대한 그릇된 신봉(信奉)이다. 사랑이 집착이 되면 파멸의 구렁텅이로 빠진다.
영문학사 불멸의 걸작 ‘폭풍의 언덕(Wuthering heights)’은 셰익스피어의 리어왕, 허먼 멜빌의 모비 딕과 더불어 영문학의 3대 비극으로 꼽힌다.
‘제인 에어’를 쓴 샬럿 브론테의 친자매인 에밀리 브론테는 그녀의 첫 소설이자 마지막 작품인 ‘폭풍의 언덕’을 쓰고 30살에 결핵으로 요절한다.
워더링하이츠 저택의 주인 언쇼는 어느날 고아 히드클리프를 데려와 자식처럼 키운다. 아버지의 편애에 반감을 가진 아들 힌들리는 히드클리프를 노예처럼 부리고 학대한다. 힌들리의 여동생 캐서린과 사랑에 빠지지만 린턴가의 에드거와 결혼하게 되자 배신감으로 가출한 히드클리프는 부유하고 의젓한 신사가 되어 증오와 복수심을 품고 돌아온다. 결혼한 캐서린은 히드클리프와 에드가 사이에서 정신착란을 일으키며 딸을 낳다가 죽는다. 히드클리프는 원수를 갚고 두 가문을 몰락시키는데 성공하지만 복수가 완성 되는 순간 사랑하는 캐서린의 무덤에서 자신을 부르는 캐서린의 환영으로 행복하게 눈을 감는다.
“내게 살아가는 가장 큰 보람은 바로 히드클리프야. 모든 것이 다 사라진다 해도 그만 살아남는다면 나는 계속 존재할 수 있어.”라는 캐서린의 고백은 증오로 불타오르던 히드클리프의 인생을 다시 사랑의 축복으로 가득 채운다.
사랑과 배신으로 불타오르던 복수의 칼날은 사랑으로 무너지고 폭풍이 휩쓸고 지나간 워더링하이츠는 다시 조화와 질서로 평온이 찿아온다.
사랑은 비누방울이다. 무지개의 오색 영롱한 빛으로 반짝이지만 입술을 갖다 대면 터져버린다. 수 십 번 망설이던 사랑의 고백은 익숙하지 못한 단어들로 허공에 뼈마디로 흩어진다. 사랑은 몇번씩 어금니 깨물고 참아야 하는 인고의 길이다. 긴 고통의 길이지만 살아 있는 자들이 벌이는 가장 아름다운 축제다.
누구를 미워하며 증오하는 것은 자신을 불지옥에 빠트리는 일이다. 미워하고 사랑하고. 사랑하고 다시 증오하는 생의 굴레 속에서 나를 향하던 그대 따스한 눈빛을 기억하며 갓 피어난 목련꽃 한송이 그대 창가에 바칩니다. 목련은 혹독한 어둠과 추위를 견디고 먼저 봄 햇살을 품고 꽃을 피웁니다.
사랑과 이별, 행복과 불행의 소용돌이 속에서 물구나무 서듯 끝없는 반복을 지속한다 해도, 영혼에서 떨어져 나간 작은 돌멩이가 끝없이 허공을 맴돈다 해도, 사랑 없는 세상에서 허우적거리는 당신에게 사랑은 ‘순례자의 길’이라 적은 쪽지 접어 기러기편에 날려 보냅니다. (Q7 Fine Art 대표)
이기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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