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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호철의 시가 있는 풍경] 뒤란을 찾은 방문객

[신호철]

[신호철]

봄날 햇볕 쨍한 오후. 뒤란을 걷고 있는 오리 두 마리를 보았다. 늦가을 따뜻한 곳을 찾아 남쪽으로 날아가는 오리 떼는 많이 보았지만 나의 정원을 가로질러 저토록 여유롭게 산책하는 한 쌍의 오리는 처음 보았다.  
 
언제인가 호숫가를 산책하다 풀을 뜯고 있는 여러 마리의 오리 떼를 지나친 적이 있었다. 그 중 한 마리가 긴 목을 내리깔고 내게 달려들어 당황한 적이 있었다. 그 후론 오리 떼가 보이면 멀리 돌아서 가곤 했었다.  
 
그날도 모른 척할까 하다가 급히 식빵을 몇 개 가져와 오리 앞에 던져 주었다. 오리 두 마리는 아무 의심 없이 내가 던져준 식빵을 납작한 주둥이로 맛있게 받아먹었다. 그리곤 데크로 올라온 나를 여전히 따라왔다. 한동안 나는 식빵을 뜯어 주었고 배가 고팠는지 오리는 허겁지겁 그것을 입으로 집어넣었다. 한 마리는 검은 머리에 짙은 녹색의 띠를 두른 모습이었고 다른 한 마리는 갈색의 몸통을 가지고 있었다. 그 후에도 몇 차례 뒤란을 걷는 그들의 모습을 창을 통해 볼 수 있었다. 내가 애증하는 정원을 그들도 사랑한 것일까? 오리가 거닐고 간 오후 불현듯 나의 정원을 찾아온 방문객들이 스쳐 지나갔다.  
 
처음엔 동네 뉘 집 개인가 했다. 늑대가 이곳에 나타날 리 만무하지만 보기에도 몸집이 작고 매서운 눈도 아니었다. 혹 승냥이? 마치 신들린 걸음걸이로 와서는 힐끗 데크 밑을 쳐다보고 있었다. 셀폰을 가지러 간 사이 홀연히 사라져 버렸다. 걸음도 휘청휘청. 배도 등가죽에 붙어 있는 걸 보니 무척 허기져 보였다. 토끼를 쫓아 이곳까지 왔다. 포기하고 돌아간 모양이다.  
 


그뿐일까? 도톰하고 맵시로운 긴 꼬리를 가진 여우도 어느 초봄 어스런 저녁 나절 뒤란을 방문해 나무숲 어두움으로 사라져 버린 적도 있었다. 요즈음은 보이지 않지만 동네 어귀에서 종종 보았던 사슴 한 쌍도 늘씬한 몸매로 귀를 쫑긋거리며 한동안 머물렀었다.  
 
한 번은 딱새란 놈이 덱크 펜스 위 나무그늘 아래 집을 짓고 새끼 4마리를 부화시킨 적도 있었다. 그 과정을 우연히 처음부터 끝까지 관찰할 수 있는 특권을 누린 적이 있었다. 딱새는 먹이를 날라다 주며 지극한 모성애를 보여주었다. 부리를 치켜든 새끼들을 어찌 알아보는지 번갈아 먹이를 주었다. 나는 가까운 곳 벤치에 앉아 저들의 사랑과 신뢰를 확인할 수 있었다. 알을 품고 있을 때에도 머리만 빠끔히 내보일 뿐 반나절을 꼼짝없이 움직이지 않았다. 온몸으로 오랜 시간 체온을 전달해 주는 듯했다. 먹이를 물어올 때도 바로 집으로 날라오지 않았다. 먼저 근처로 날아와 앉은 후 짧은 시간의 공백을 두고 집으로 왔다. 모두 자라 날아간 후 새집을 치우면서 딱새의 지긋한 큰 눈의 사랑과 동그란 몸집으로 뒷동 알을 품고 있던 생각이 나 웃음이 났다.  
 
더 기막힌 일은 기르지도 않은 토끼가 우리 집 데크 밑에 살림을 차렸다는 일이다. 몇 마리인지는 잘 모르지만 들락거리는 토끼 가족은 짐작컨데 6마리 정도는 될듯해 보였다. 뒤란을 주 무대로 옆집 나무숲을 넘나드는 토끼들은 평화롭게 엎드려 연두 푸른 잎들을 뜯고 있는 것을 자주 볼 수 있었다. 데크 밑이야말로 안전하고 비와 눈을 피할 수 있는 곳, 천혜의 요새가 아닐까 생각된다.  
 
새벽잠을 깨우는 건 새들의 지저귐이다. 노래인지 대화인지는 모르지만 잠결에 들려오는 새들의 소리는 머리를 맑게 정화해준다. 어느 나뭇가지에 앉았는지 알 수 없지만 새벽 하늘 가득히 세레나데를 연주한다. 그 나뭇가지 사이로 다람쥐들이 나무를 탄다. 이 나무에서 저 나무로 한 마리가 오르면 어느새 다른 한 마리가 그 뒤를 쫓는다. 한국에서 보는 줄무늬가 있는 예쁜 다람쥐가 아니라 좀 거칠고 사나운 느낌의 다람쥐라 할까? 이른 아침부터 먹이를 찾아 구석구석 땅을 파고 숨기느라 정신이 없다. 제가 숨겨놓은 그 많은 먹이를 모두 찾기나 할는지? 눈으로 볼 수 없는 한밤중엔 또 얼마나 예측불허의 방문객들이 다녀갈까? 잔디 위에, 나무 위에, 숲 사이에, 덱크 주변에, 꽃들 사이사이에 미처 생각하지 못한 구석구석에까지 저들의 수많은 발자국들이 남겨져 있겠지.  
 
그 위를 걸으며, 그 나뭇가지 사이의 노래를 들으며, 꽃밭 꽃들의 숨소리를 느끼며, 겨우내 썰렁했던 화분에 꽃모종을 만들며 꼭 초대하고 싶은 사람을 떠 올린다. 올봄 뒤란을 찿은 첫 번째 방문객이 되어주기를, 당신의 발자국과 숨소리를 뒤란의 곳곳에 남겨주기를……
 
 
당신의 마음을 훔치려다
당신에게 잡히고 말았네
당신의 마음은 지남철 같아
근처만 서성거려도
붙어버리고 마네 (시인 화가)
 
 
 
 

신호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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