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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약하고, 벗고…공포의 지하철

LA대중교통 치안 비상 르포

한인 시니어들과 동행 승차
승강장 적막에 긴장 …악취
차량 분리돼 이동못해 불안

뒷자리 남성 손엔 드라이버
옆좌석선 가슴에 약물 투약
유일한 대비책은 '호루라기'

 온 몸에 문신을 한 남성이 앞에 앉아 있다. 이 남성은 자전거를 끌고 객차로 들어왔다가 자전거를 객차 바닥에 내팽겨쳤다. 김상진 기자

온 몸에 문신을 한 남성이 앞에 앉아 있다. 이 남성은 자전거를 끌고 객차로 들어왔다가 자전거를 객차 바닥에 내팽겨쳤다. 김상진 기자

지난 22일 한 괴한이 B라인 유니버설/스튜디오시티역에 정차하던 지하철 안에서 갑자기 한 여성의 목을 칼로 찔렀다. 이 뿐만 아니다. LA지역 대중교통의 잇따른 강력 범죄 발생으로 급기야 메트로 이사회는 지난 25일 ‘공공안전 비상사태’ 〈본지 4월29일자 A-2면〉를 선포했다.
 
이토록 위험이 만연해도 차량 운전이 어려운 한인 시니어들은 한인 마켓, 병원, 교회 등을 가기 위해 어김없이 대중교통을 이용해야 한다. 그들은 메트로의 위험성을 누구보다 잘 안다. 지난 26일 본지는 메트로를 자주 이용하는 클라라 이(78)씨와 대중교통을 거의 처음 이용하는 김윤자(81)씨 등과 함께 지하철에 탑승해봤다. 지하철 안은 소리 없는 무법지대였다.
 
클라라 리(오른쪽)와 김윤자 씨가 퍼싱 스퀘어 역에서 지하철을 타고 한인타운으로 향하고 있다. 뒤에 앉은 남성이 뾰족한 공구를 만지작거리고 있어 이씨와 김씨는 자리를 옮겼다. 김상진 기자

클라라 리(오른쪽)와 김윤자 씨가 퍼싱 스퀘어 역에서 지하철을 타고 한인타운으로 향하고 있다. 뒤에 앉은 남성이 뾰족한 공구를 만지작거리고 있어 이씨와 김씨는 자리를 옮겼다. 김상진 기자

26일 오후 1시 20분, 앤젤러스 플라자 시니어 아파트 앞이다. LA에서 한인 시니어가 가장 많이 사는 곳이다. 김윤자씨와 클라라 이씨는 다운타운 퍼싱 스퀘어역에서 주로 지하철을 탄다.  
 
아파트 앞에서 퍼싱 스퀘어역까지는 도보로 5분 거리다. 이동 중 이씨가 갑자기 영화에서도 자주 등장하는 트롤리가 있는 ‘앤젤레스 플라이트’ 출입구로 가자고 했다. 이유를 물었다. 이씨는 “역으로 들어가는 또 다른 출입구보다 이곳으로 가야 노숙자도 없고 깨끗하다”고 답했다. 지하철역 안으로 들어가기 전부터 안전한 방법을 찾고 있는 셈이다.  
 


이날 행선지는 웨스턴역이다. 한인마켓을 가기 위해서다. 병원에 가려면 D라인 지하철을 타고 놀먼디역에서 내리곤 한다.
 
지하철을 처음 이용하는 김씨는 “생각했던 것보다 깨끗하다”고 말하자 이씨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든다. 이씨는 “춥고 비가 오면 노숙자들이 역 안으로 들어와 먹고 자기 때문에 쓰레기가 많아진다”며 “그나마 깨끗해져서 이 정도”라고 덧붙였다. 깨끗한게 맞나 싶다. 지하로 향할수록 코를 찌르는 악취는 더 진동했다.
 
역안으로 들어가니 메트로 직원이 단 한명도 보이지 않는다. 비상사태를 선포한게 맞는지 의문이 들 정도다. 천장을 봤다. 달랑 CCTV는 4개 뿐이다. 이씨는 “D 라인의 종점이 한인타운인 웨스턴역인데 거기도 메트로 직원이 잘 안 보이고 열차 안에 쓰레기를 치우는 사람 조차 없다”고 말했다.  
 
대낮에 다운타운 중심 역인데도 승강장에는 사람이 고작 열댓 명 정도다. 적막이 흘렀다. 갑자기 누군가 이상한 행동을 하거나 위협을 끼치면 적절한 대처가 취해지지 않을 것 같은 분위기다. 마침 그때 상의를 벗은 한 타인종 남성이 작은 유리 파이프를 들고 나타났다. 약에 취해있는지 이리저리 걸어 다녔다. 그런 그를 보자 생기 있던 두 여성 시니어의 얼굴이 무표정으로 변했다.  
 
이씨와 김씨는 본인 앞에 선 열차가 아닌 다른 칸에 몸을 넣었다.  
 
이씨는 “열차가 승강장에 들어오면 칸 안에 사람부터 본다”며 “열차에 탈 때 이상한 사람이 많이 없어 보이는 칸에 탄다”고 말했다. 이씨의 말처럼 지하철은 첫 탑승이 중요해 보였다. 지하철 칸들이 연결돼있는 한국과 달리 LA 메트로 지하철은 각 칸이 분리돼 있었다. 만약 칸 안에서 무슨 일이 생겨도 칸 이동이 불가하다.  
 
두 시니어는 앉은 자리에서 대화를 나눴다. 다만, 그들의 대화는 오래가지 못했다. 다음 역인 7가/메트로센터 역에서 건장한 체격에 얼굴을 문신으로 도배한 타인종 남성이 그들의 뒷자리에 탑승했다. 남성은 혼잣말을 계속 중얼거렸다. 게다가 드라이버를 손에 들고 있었다. 해당 남성이 갑자기 누군가를 공격해도 전혀 이상할 것 없어 보였다. 그의 등장으로 두 시니어는 말이 없어지고 낯빛이 어두워졌다. 
 
약물에 취해 보이는 한 남성이 지하철 의자에 앉아 마약류를 몸에 투여하고 있다. 김상진 기자

약물에 취해 보이는 한 남성이 지하철 의자에 앉아 마약류를 몸에 투여하고 있다. 김상진 기자

지하철은 무법지대 그 자체다. 마약을 투약하는 이도 있다. 앞서 서술한 퍼싱스퀘어역 승강장의 타인종 남성도 같은 칸에 탑승했다. 자신의 가슴팍에 주사를 꽂았다. 그의 손에는 약병 대신 라이터와 돌돌 말린 은박지가 있었다.  
 
위험한 상황이 계속되자 이씨는 “이상해 보이는 외국인들이랑 눈을 안 마주치려 하고 열쇠고리에 호루라기를 항상 소지하고 다닌다”며 “의자도 지저분하고 냄새날 때가 많아서 잘 앉지 않는다”고 전했다. 가장 위험했던 순간을 묻자 이씨는 “작년 9월 열차 칸에 타인종 남성 1명, 여성 1명 해서 3명만 있었는데 갑자기 남성이 벌떡 일어나서 보니 손에 식칼을 쥐고 있었다”며 “남성이 다가오는데 다행히 나를 지나서 열차 칸 끝으로 가고 나와 다른 타인종 여성은 바로 다음 역에서 내렸다”고 말했다.  
 
이씨와 김씨를 포함한 한인 시니어들에게 지하철은 LA시에서 살아가는 데 꼭 필요한 이동 수단이다. 택시도 있지만 지하철과 버스보다 경제적 부담이 있다. 그렇기에 위험한 줄 알면서도 LA 메트로 지하철과 버스를 이용한다. 그들은 위험을 무릅쓰고 지금도 LA 메트로 버스와 지하철에 올라탄다.
졸고 있는 한 남성이 의자 바닥에 쏟은 유제품이 흥건하게 고여 있다.김상진 기자

졸고 있는 한 남성이 의자 바닥에 쏟은 유제품이 흥건하게 고여 있다.김상진 기자


김경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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