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서 사찰 소개팅 '나는 절로' 화제
저출산 해결위해 조계종 나서
불교식 '나는 솔로' 맞선 행사
20명 참가자 선발 경쟁률 17:1
일회성 만남 거르려 심사 신중
1박2일 템플스테이 프로그램
술자리 대신 게임·차담·산책
일부 참가자 맞선 회의론 제기
"집값 안정부터 해결해야 결혼"
싱글들은 사찰 법당 중앙의 회색 매트 위에 앉아 있었는데, 뒤쪽에서 몰려든 20여 명의 기자들이 작은 소동을 일으킬까 봐 긴장한 기색이 역력했다. 짜증이 난 한 카메라맨은 다른 기자에게 “내 카메라에서 좀 비켜줄래요?”라고 소리쳤다.
약 1200만 명의 신도를 보유한 한국 최대 불교 종단인 조계종의 세 스님은 평온한 미소를 지으며 이를 지켜봤다.
조계종사회복지재단(이하 재단)이 ‘사회통합’이라는 종교적 사명을 실천하기 위해 지난해에 시작한 ‘나는 절로’의 세 번째 행사는 이렇게 시작됐다.
사회자는 참가자들에게 국가의 장래만큼이나 중요한 현안을 상기시켰다. 사회자는 ‘고령화 사회’라는 제목의 슬라이드쇼를 정면에 띄우며 화두를 던졌다.
“동네에 있던 탁아소가 어느 날 양로원으로 변한 것을 여러분 모두 한번쯤 보셨을 겁니다.”
슬라이드쇼는 지난 20년 동안 매년 신생아 수가 절반으로 줄었고 2050년이면 노인이 전체 인구의 약 40%를 차지해 국가의 복지 시스템에 부담을 주고 노동력 부족이 심화될 것이라는 내용이 골자였다. 사회자는 “저출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여러분이 할 일은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좋은 배우자를 찾는 것”이라는 말로 연설을 마무리했다.
이날 행사는 최근 전국적인 인기를 얻고 있는 맞선 리얼리티 TV 시리즈 ‘나는 솔로’의 불교식 버전이다.
금욕주의 수행자들이 세속적인 연애에 도전한다는 특이한 불교 버전의 행사는 입소문을 타면서 인기를 얻고 있다. 재단측은 이를 언론에 공개함으로 그 유명세의 극대화를 꾀하고 있다.
재단을 이끌고 있는 묘장 스님은 “우리는 가능한 한 이 행사를 널리 알리려고 한다”며 “언젠가는 전국의 모든 불교 사원에서 비슷한 행사들이 만들어지길 희망한다”고 말했다.
남자 10명, 여자 10명으로 구성된 참가자들은 이날 언론 취재가 있을 것이라는 사전 안내를 받긴 했지만 영화 세트장 수준의 카메라들이 따라다닐 것이라고는 예상치 못 했다. 금융업에 종사하는 30세의 한 참가자는 “머릿속이 하얘지고 있다”면서 “카메라맨이 한 명 정도 올거라고 생각했다. 큰 범죄를 저지른 사람이 돼서 기자단 앞에 선 기분”이라고 말했다.
그의 배지에 적힌 이름 ‘성훈’은 나는 솔로 프로그램에서처럼 여러 가명 쪽지 중에서 뽑아낸 이름이다.
그는 한국에서 가장 오래된 불교 사찰인 전등사에서 4월 주말에 열리는 행사에 참가를 신청한 남성 147명, 여성 190명 중 한 명이다.
묘장 스님은 “참가자들을 매우 신중하게 심사한다”라며 “일회성 만남을 원하는 사람들을 걸러내기 위해서”라고 말했다.
행사 참여는 모든 종교인을 대상으로 무료로 개방됐다. 지원자는 고용 기록과 개인 에세이를 제출해야 했다. 진정성 있는 장기적 만남 가능성을 높이기 위해 나이와 지역도 고려했다. 하지만 묘장 스님은 가장 중요한 것으로 한 가지 요소를 꼽았다. ‘갈망(yearning)’이다.
성훈 씨처럼 진정한 사랑을 갈망하는 사람만이 합격할 수 있다. 성훈 씨는 대학 시절 마지막으로 진지한 연애를 한 이후 사랑을 찾는 것이 어렵다는 것을 깨달았다. 데이팅앱도 싫지만 많은 사람들이 모이는 장소는 그를 더욱 힘들게 했다. 그의 어머니는 그에게 데이트 레슨을 받으라는 조언까지 했다.
그는 “30대에 들어서면서 더 만남이 조심스러워졌다”며 “젊었을 때는 매력 하나만 있으면 만날 수 있었지만, 지금은 연애 초반에 상대에 대한 작은 의심 하나에도 전전긍긍한다”고 말했다.
행사에 참가한 싱글들은 자홍색 조끼와 통이 넓은 남색 바지로 구성된 불교 전통의상인 승복으로 갈아입었다. 그후 전문 사회자 심목민 씨가 그들을 주위로 모았다.
하늘색 정장을 차려입은 심 씨는 지금까지 비슷한 행사를 50차례 정도 진행했다고 전했다. 한국의 출산율(여성 1명이 평생 낳는 평균 자녀 수)을 안정적인 인구 유지에 필요한 2.1명에 근접하게 하려는 국가적 노력의 일환으로 지방 정부가 주최한 행사들이다.
치솟는 집값, 일과 삶의 균형, 전통적인 남녀 역할의 붕괴로 인해 한국에서는 결혼과 출산을 기피하는 경향이 계속되고 있다.
30세에서 34세 사이의 절반 이상이 미혼이며, 이미 세계 최저 수준인 한국의 출산율은 지난해 0.72명으로 더 떨어졌다.
심씨가 이날 선보인 게임은 초반의 흥미를 유발하고 가벼운 신체 접촉을 위해 고안된 게임이다. 심씨는 참가자들이 돌아가며 나머지 참가자들의 질문에 답하도록 했다.
한 남성은 33세 여성 경찰관인 ‘지수’씨에게 “헤어스타일이 너무 예쁘다”면서 헤어 제품을 뭘 쓰는지 물었다. 지수씨는 미소를 지으며 수줍게 대답했다.
‘팀 빙고’ 게임으로 넘어갈 무렵, 처음의 수줍음은 승리에 대한 전적인 의지로 바뀌었다. 점수를 얻을 때마다 싱글들은 소리를 지르며 서로 하이파이브를 했다.
심씨는 그들이 왜 여기 모였는지 끊임없이 상기시켰다.
“여러분은 내 절반의 짝을 찾기 위해 여기 모였습니다. 게임은 목적을 위한 수단일 뿐입니다!”
모든 일정은 남녀가 번갈아 가며 짧은 대화를 나누는 스피드 데이트를 끝으로 마무리됐다.
이후 사원 식당에서 저녁 식사를 위해 싱글들은 짝을 지어 흩어졌다. 게임 점수가 가장 높은 여성들이 먼저 데이트 상대 선택권을 가졌다.
5번째로 뽑힌 31세의 치과위생사 선재씨는 “피곤했지만 재미있었다”면서 “상대가 마음에 드는지는 이야기를 나눠봐야 알 수 있을 것 같다”고 말했다.
저녁 식사 후 그룹은 한 차례 더 게임을 하기 위해 모였다. 심 대표는 분위기 전환을 위해 싱글들에게 상대의 손을 잡고 서로의 눈을 바라보라고 지시했다.
“자, 마음을 비우고 서로 가까이 앉으세요.” 심씨의 말이 끝나자 커플들은 서로 무릎을 맞대고 귓속말을 나눴다.
성훈씨는 33세의 부동산 컨설턴트 유진씨와 이야기를 나눴다. 그녀의 여동생도 불교 사찰에서 남편을 만났다.
저녁의 마지막 순서는 낭만적인 카페 나들이다. 커플들은 찻집으로 걸어갔다. 은은한 노란 조명 아래서 몇 시간 동안 대화를 나눈 후, 커플들은 다음날 아침 산책에 함께할 데이트 상대를 선택했다.
주최자 중 한 명인 공지유씨는 “참가자들은 오늘 밤 가장 마음에 드는 사람을 저희에게 문자로 알려줄 것”이라며 “일치하는 사람이 있으면 두 사람이 짝을 이루어 함께 산책하게 된다”고 말했다.
작년 행사에서는 두 쌍의 커플이 성사됐다. 그 중 한 커플은 여전히 교제 중이다. 주최 측은 이번 행사에서 3쌍이 맺어지길 기대하고 있다.
다음날 아침, 사찰 마당에서 만난 프로그램 기획자 공씨는 만족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그리고는 “지난 밤 4쌍이 탄생했다”고 발표했다.
다만 누가 누구를 뽑았는지에 대한 자세한 내용은 상처를 주지 않기 위해 그룹에 공개하지 않겠다고 덧붙였다.
이날 선택받지 못한 참가자들은 다소 회의적인 의견도 내놓았다. 이런 행사들이 과연 저출산 위기를 극복하는 데 도움이 될지에 대한 의문이다.
“정말 해결해야 할 것은 생활비와 집값”이라는 참가자 채원씨의 말에 모여있던 몇몇 참가자들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면서 그녀는 “내 몸 하나 돌보는 것만으로도 바빠 가족을 꾸리기 망설이게 된다”며 “결혼을 하더라도 아기를 낳을지는 다시 한 번 생각해 보겠다”고 말했다.
폐막식에서 사찰의 주지 여암 스님은 삶의 지혜를 담은 조언을 나눴다. 그는 “관계란 불타는 사랑이 아니라 조용히 쌓여가는 애정에서 만들어지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가 질문을 받기 시작하자 성훈씨가 손을 들었다. “이 공허함, 인생에서 중요한 무언가를 놓치고 있다는 느낌을 어떻게 하면 없앨 수 있을까요?”
주지스님은 인생의 어떤 여정은 반드시 혼자서 해야 한다는 것을 일깨워주었다.
“그것은 여러분 스스로 해결해야 할 문제입니다. 다른 사람이 당신을 구해줄 수는 없기 때문이죠.”
원문은 LA타임스 4월22일자 캘리포니아섹션 1면 ‘Inspired by reality TV, Buddhist monks become matchmakers’ 제목의 기사입니다.
글=맥스 김 기자 · 사진=진 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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