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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를 열며] 구름이

하늘에 떠 있는 흰 구름을 닮았다 해서 이름 붙여진 구름이는 아들네 집 강아지다. 이제 한 살이 된 구름이는 비단 실처럼 희고 매끄러운 털을 가졌으며, 그 작은 얼굴에 서리태콩을 박아놓은 것 같은 새까만 두 눈과 까맣게 반짝이는 코를 가진 귀여운 아이다. 구름이가 태어난 곳은 서울이며, 1년 전 이곳에 왔을 때는 내 손바닥만 했다.
 
나는 아들네 뒤뜰에 심어놓은 채소들이 궁금해 가끔 아들 집에 온다. 구름이는 나를 무척 좋아한다. 뭐든지 깨물기를 좋아하는 구름이에게 나는 내 손가락을 깨물어도 그냥 놓아둔다. 아이들은 그렇게 하지말라 하지만 조곤조곤 아프지도 않게 깨무는 것을 나는 뿌리치지 않는다.  
 
온 가족이 일터로, 학교로 다 나간 빈집에 구름이는 심심하다. 내가 가면 얼마나 반가워하는지 긴 귀털을 휘날리며 이리 뛰고 저리 뛰며 나를 환영하는 세리머니가 너무 격하다 못해 숨이 멎을 듯 헉헉거린다. 그리고는 제 물그릇으로 달려가서는 허겁지겁 물을 핥으며 숨을 고른다. 나의 무릎에 앉아 내 손가락을 깨무는 구름이의 얼굴은 더없이 행복하고 만족한 표정이다. 세상의 모든 것을 다 가졌다는 눈빛이다. 그러다가 내가 조금만 움직여도 그의 눈동자는 불안하게 힐끔거리며 내 눈치를 본다. 나도 일어서야 할 순간 때문에 초조하기는 마찬가지이다. 마침내, 아이를 밀치고 일어서는 나 자신이 표독하다는 생각을 스스로 하게 된다. 내 뒤 꼬랑지를 붙들고 서 있을 아이를 돌아보지 않고 문을 열고 나와 그대로 닫았다. 그런데 종일 내 눈앞에 구름이가 보인다. 실망스러운 슬픈 눈빛을 하고….  
 
요즘엔 개의 위치가 많이 달라져 있다. 사람을 위로하는 반려견으로….
 


아이들에게 개의 존재는 더 각별하다. 뭐라 가늠할 수 없는 살붙이처럼 애정을 쏟게 하는 친구라 할 수 있다. 심신에 위로가 필요한 사람이나 외로운 노인들에게도 개는 참 좋은 가족이 된다. 개는 예쁘기도 하지만 저 좋아하는 사람에게는 얼마나 살갑게 구는지 스스로 대접받게 한다. 이 각박한 세상에 누가 저만큼 주인에게 관심과 사랑을 쏟아주며 충성을 다 하겠는가? 개는 주인이 젊었든지 늙었든지 생김이 잘생겼든 못생겼든 상관하지 않는다.  
 
호머의 소설 『오디세이아』에 아르고스라는 개 이야기가 나온다. 아르고스는 오디세우스가 키우던 개 이름이다. 오디세우스가 트로이전쟁에 나갔다가 고생 끝에 20년 만에 집으로 돌아온다. 오랫동안 오디세우스가 없는 궁궐에는 아름다운 오디세우스의 아내 펠레로페에게 청혼하러 몰려든 구혼자들이 매일 살림을 축내며 흥청거리고 있었다. 아테나 여신은 오디세우스를 늙은 거지로 변신시켜 그들에게 복수하도록 돕는다.  
 
오디세우스가 사랑하며 키우던 아르고스 개는 돌보는 이 없이 거리를 떠돌면서 20년 동안 매일 궁궐 문 앞에 앉아 돌아올 주인을 기다렸다. 아무도 알아보지 못한 거지 행색의 오디세우스를 아르고스는 바로 알아보고 꼬리를 흔들지만 주인을 만난 아르고스는 늙은 몸으로 너무 흥분하고 기진하여서 그 자리에서 죽고 만다.  
 
구름이도 주인의 발걸음, 목소리, 그림자까지도 아는 것 같다. 밖이 보이지 않는 집안에서 길 건너의 그 어떤 움직임에도 호되게 반응하며 짖어대지만, 내가 집 주위를 돌아다니며 일을 해도 짖지 않는다. 일을 마치고 문을 열면, 내가 들어오기만을 기다리던 구름이는 세차게 꼬리를 흔들며 뛰어오른다.
 
구름이가 아주 어렸을 적, 밥 먹는 식탁 아래서 간절한 눈빛으로 음식을 달라는 구름이에게 슬쩍 먹던 음식을 떨어뜨려 준 적이 있었다. 그것을 본 8살 손자는 사람 음식을 주면 강아지가 죽는다고 했다며 ‘She will be die’라면서 눈물을 뚝뚝 흘리고 있었다. 할머니가 죽어도 저렇게 눈물을 흘릴까 싶게 당황스러웠지만, 순진한 어린아이는 사랑하는 개를 잃게 되지 않을까 가슴으로 흘리는 슬픈 눈물이었던 것이다.

이경애 /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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