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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아침에] 하늘을 떠받치는 기둥

이창민 목사-LA연합감리교회

이창민 목사-LA연합감리교회

한동안 비가 내리지 않아 물 걱정이 컸는데 겨우내 줄기차게 내린 비에 그나마 물 걱정이 사라졌다니 다행이다. 그런데 물 걱정이 없어졌다고 좋아하던 것도 잠시, 이제는 비가 너무 많이 와서 걱정이란다. 길이 패고, 땅이 갈라지고, 집이 무너진다고 푸념하는 사람들은 이제는 비가 더 내리면 안 된다고 하면서 또 다른 물 걱정에 마음의 주름만 늘어간다.
 
가뭄이 한창일 때는 물도 물이지만, 산불로 인한 피해도 컸는데, 비가 자주 내려서 그런지 산불 소식이 뜸하다. 대신 들판을 아름답게 수놓은 야생화가 그 어느 때보다 화려하게 피었다는 소식은 수줍음 많은 봄 처녀의 사뿐한 발걸음처럼 우리 마음을 괜스레 설레게 한다.  
 
해마다 야생화가 단골로 피던 곳은 물론이고, 평소에는 풀 한 포기 나지 않던 사막 한복판까지 지난겨울에 내린 비를 깊이 머금고 있다가 봄의 기운을 자양분 삼아 꽃을 피우는 것을 볼라치면 생명의 신비와 끈질김에 마음의 옷깃을 여미게 된다.  
 
봄빛에 얼굴을 활짝 펴고 고개를 꼿꼿이 든 채 황량한 벌판을 형형색색의 꽃동산으로 바꾸어놓았다고 뽐내는 들꽃의 나댐과, 그에 지지 않으려는 듯 온 세상을 초록으로 물들이며 때마침 부는 바람에 맞춰 군무를 추는 봄 풀잎의 공연을 보는데 시 한 편이 떠올랐다. ‘파랗게, 땅 전체를’이라는 제목으로 정현종 시인이 쓴 시다.  
 


시인은 봄이 되자 기지개를 켜며 대지를 뚫고 올라와 세상을 파랗게 뒤덮는 봄 풀잎을 보면서 이렇게 노래했다. ‘파랗게, 땅 전체를 들어 올리는 / 봄 풀잎 / 하늘 무너지지 않게 / 떠받치고 있는 기둥 / 봄 풀잎’  
 
아무 데나 함부로 핀 봄 풀잎이 시인의 상상력을 만나자, 땅을 들어 올리는 힘줄이 되고 하늘이 무너지지 않게 떠받치는 기둥이 되었다. 시인은 지천으로 깔린 봄 풀잎은 흔하다는 이유만으로 무시당해서는 안 되는 존재라고 경고한다. 깊이 뿌리를 내린 아름드리나무만 땅을 들어 올리는 힘줄이 아니고, 우람하게 높이 솟은 나무만 하늘을 떠받치는 기둥이 아니라, 작고 연약한 봄 풀잎도 땅을 들어 올리는 힘줄이고 하늘을 떠받치는 기둥이라는 말을 듣는 데 마음이 뜨끔했다.
 
세상을 떠받치는 기둥이 되라는 부모의 기대는 어름적대다 지나간 세월과 함께 과거에 묻혔기 때문이고, 뿌리 깊은 나무처럼 굳건히 서서 세상의 유익한 사람이 되라는 교장 선생님의 훈화는 교정을 나서자마자 불어닥친 거센 바람에 날아가 버렸고, 머리가 될지언정 꼬리가 되지 말라는 목사님의 간절한 당부는 엄범부렁하다 흘려보낸 세월에 밀려 효험 없는 기도가 되었기 때문이다.  
 
시인은 봄바람에 출렁이는 봄 풀잎처럼 하루하루 작은 일에도 휘청대며 사는 보잘것없는 인생을 향해 땅을 들어 올리는 힘줄이 되라고, 하늘을 떠받치는 기둥으로 살라고 호령한다. 그렇다. 바람에 흔들리는 봄 풀잎처럼 가냘프지만, 서로를 버팀대로 삼고 가지런히 서서 고개를 반듯이 들고 사는 이들이야말로 땅을 들어 올리는 힘줄이요, 하늘을 떠받치는 기둥이라는 시인의 말은 백번 천번 옳다.  
 
이제 우리 차례다. 봄 풀잎처럼 작고 연약하지만, 땅을 들어 올리는 힘줄로 살아야 하는 만만치 않은 존재임을 잊지 말자. 하늘을 떠받치는 기둥과 같이 나름 괜찮은 존재라는 자긍심을 가지고 세상에 대한 책임을 다하며 살자.  

이창민 / 목사·LA연합감리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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