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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망경] 왜 너 자신을 빼놓느냐

스티브는 전형적인 정신질환 증상이 전혀 없는 40대 중반의 백인이다. 자존심이 하늘을 찌르고 변덕이 죽 끓듯 하면서 때로는 고집불통이고 걸핏하면 화를 낸다. 화가 치밀면 고함을 지르고 벽을 주먹으로 쾅쾅 때리는 버릇이 있다.
 
그는 수년 전에 저처럼 성미가 불같은 걸프렌드와 한동안 같이 살았다. 그들은 언쟁이 잦았다. 여자가 집을 나가고 그는 심한 상실감에 빠진다. 이윽고 상실감이 분노로 변하면서 모든 세상 사람을 원망하고 저주한다.
 
…스티브야, 너는 도대체가 왜 자기 자신은 제쳐놓고 남들에게만 신경을 쓰면서 그토록 불행한 삶을 사느냐. - 내 주변 사람들이 하나같이 악의를 품고 나를 못살게 굴기 때문에 자신을 방어하기 위해 그러는 겁니다.
 
…자신은 남에게 실수로라도 못되게 군적이 없느냐. - 나는 되받아치기만 할 뿐이지 내 쪽에서 먼저 남을 해코지하는 법이 절대로 없습니다. …왜 그리도 사소한 일로 화를 내며 소리를 지르고 욕설까지 퍼붓는지. - 남들이 나를 그렇게 만듭니다. …살다 보면 어둡고 짜증스러운 기분이나 나쁜 생각이 들 때가 있지 않을까. - 내 마음은 항상 좋은 생각들이 넘쳐흐르기 때문에 나쁜 생각이 들어설 여지가 없습니다.
 


범죄도 많이 저지른 스티브에게 나르시시즘적 ‘반사회적 성격장애’라는 진단명을 붙이면 어떨까. Psychopath? 잘 생각해보면, 상습적 거짓말쟁이와 많은 범죄경력으로 사회에 악을 끼치는 사람을 직설적으로 ‘사기꾼’, ‘범죄자’라 부르는 대신에 굳이 영어로 바꾸어서 ‘사이코패스’라 부르는 우리의 말 습관이 좀 이상한 데가 있지 않은가.
 
우리는 빛과 그림자를 동시에 가슴에 품고 산다. 속마음이 100% 빛으로 충만하거나 100% 어두움으로 덮인 사람은 세상 어디에도 없다. 신의 마음 또한 인류를 구원하려는 의도와 어두운 악마와의 투쟁의식이 공존한다고 보는데. 차제에 나는 ‘light(빛)=good’, 그리고 ‘dark(어둠)=bad’라는 등식을 설정하는 양분법을 내세운다.
 
스티브는 자신의 내면적 어둠을 감당하고 소화하는 원숙한 성격이 아니다. 그는 과음 후 위 내용물을 토해내듯 자신의 ‘bad’를 토해낸다. 남들을 일종의 용기(容器)로 보는 것이랄지. 타인의 실용가치를 착취하거나 자신을 보호하는 용구로 사용한다. 자신의 가상적 청결을 위하여 남들을 불결한 존재로 부각한다. 나는 깨끗한 주체이고 남들은 더러운 ‘대상’이다. 한국 정치계에서는 이것을 ‘내로남불’이라 지칭하지.
 
‘대상관계 이론, Object Relations Theory’를 나는 추구한다. 정신분석에서는 ‘다른 사람’을 ‘대상’이라 부른다. 우리의 마음은 늘 과거와 현재를 누비면서 남들과 연결돼 있다. 스티브를 무인도에 떨어뜨려 놓으면 그 개 같은 성질이 사그라질 것임이 분명하다. 뗑깡을 부릴 대상이 없기 때문이다.
 
성질 더러운 사내놈은 군대에 갔다 오면 심성이 바로 잡힌다는 말이 있다. 영국에서 발표된 논문에서도 같은 결론을 내린다. (1980) 무인도와는 반대로 철통 같은 규율과 상명하복(上命下服)의 원칙이 안하무인격의 무질서를 바로잡아 준다는 이론이다. 약은 일시적 반창고 역할에서 그칠 뿐 성격장애를 고치지 못한다.
 
…스티브야, 남들이 널 못살게 구는 이유와 구실을 주지 않는 게 어떠냐. - 말이 쉽지, 어디 그게 가능합니까. 내게 이래라저래라 해야 아무 소용이 없어요. 날 치료하지 말고 내 주변인들을 치료하세요. …글쎄, 그게 가능하다고 생각하느냐.

서량 / 시인·정신과 의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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