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원임의 마주보기] 아동기의 부정적 경험
때로는 자식이 부모의 높은 기대 수준에 부응하지 못해서, 부모는 자식을 경멸하고 부끄럽게 생각한다. 이에 자식은 부모의 요구를 만족시키지 못했다는 이유로 죄책감과 열등감에 시달린다. 때로는 부모가 화를 참지 못해서 자식에게 폭력을 가하고, 매사에 사소한 것에도 통제와 비판을 하고, 심지어 자신의 비뚤어진 욕구만족 수단으로 강압적인 성적 학대도 가한다. 그러면 자식들은 상처가 매우 커서, 외상후스트레스장애(post-traumatic stress disorder, PTSD)로 평생 고통을 받게 된다.
부모가 아이에게 ‘지속적이고 장기적인’ 스트레스를 주면, 아이의 충동 통제와 만족지연능력, 인지능력과 지적능력, 합리적 의사결정, 공감과 감정이입, 협동성, 나아가 친사회성에 악영향을 미치고 만다. 즉 뇌의 감정을 다스리는 “정서뇌”를 어지럽히고 망쳐서, 결국 이성적인 “지성뇌”가 그 기능을 제대로 하기가 매우 어렵게 만들어 버리는 것이다.
이런 상황에 놓인 아이는 자라면서 나쁜 기억을 잠재우거나 없애고 좋은 기억으로 덮기 위해서, 일생 동안 그 고통과 지옥에서 벗어나고자 애쓰고 힘써야 한다. 또한 그 아이가 이후 가정을 꾸려 좋은 부모가 되는 데에도 지장을 줄 수 있다. 이에 부모로서 자신의 가정환경과 자녀교육을 되짚어 보고, 필요하다면 변화해 나갈 필요가 있다.
여기에 매우 적합하고 유용한 도구를 소개하고자 한다. 그것은 바로 아동기의 부정적 경험(Adverse Childhood Experiences, ACE) 설문지다. 이 설문지(ACEs Quiz)는 아이가 자라면서 가정 내에서 18세 생일 전에 얼마나 불리하게 부정적이고 나쁜 경험들을 했는지를 10가지 질문을 통해서 물어본다. 이 설문지의 한국어 번역본을 원한다면, 인터넷 검색을 통해서 매우 쉽게 찾을 수 있다. 그리고 영문본보다 질문을 더 간결하게 물어본다. 주의할 점은 이 설문지가 가정 외에서의 스트레스 요인과 개인차는 고려하지 않고 있으므로 절대적인 기준으로 삼을 필요는 없다.
영문 설문지상에서 첫 번째 질문은 다음과 같이 시작한다: “같이 사는 부모님이나 어른이 귀하에게 자주 또는 아주 자주 욕설하고 모욕하거나 비하하고 수치심을 준 적이 있습니까?” 나는 이 설문지에서 ‘자주 또는 아주 자주’라는 문구에 중요한 의미를 둔다. 즉 부모가 얼마나 “종종” 아이를 괴롭히느냐가 관건이다. 부모가 아이에게 스트레스를 자주, 지속적으로 가하면 아이는 “병”이 들 수밖에 없는 것이다. 달고 짜고 기름진 음식을 꾸준히 많이 먹으면 몸이 병들지 않는가.
나도 ACEs Quiz를 보았다. 내 점수는 7/10이다. 꽤 높다! 슬프지만 맞다. 나는 결코 그렇게 안정적이고 행복한 어린 시절을 보내지 않았다. 나는 누구라도 이 설문지를 이용하여 자신의 과거를 반추해보고, 지금 가정의 현주소를 진단해볼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면 내가 얼마나 내 아이에게 좋은 부모로서 제대로 “인간적인” 가정환경을 이루며 살고 있는 지를 알게 된다.
우리의 부모역할은 끊임없는 반성과 개선이 필요하다. 그러므로 굳이 이 설문지가 아니더라도, 자녀를 둔 부모라면 항상 이렇게 묻자: ‘나는 지금 내 아이를 내 맘대로 통제하고 조절하려고 하는가, 아니면 아이의 의사를 존중하며 아름다운 인격체로서 대하고 있는가?’ (전 위스콘신대 교육학과 교수, 교육학 박사)
손원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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