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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기희의 같은 하늘 다른 세상] 불에 그을린 우리집 대들보

이기희

이기희

서까래가 부서져도 집의 흔적은 남는다. 토네이도나 태풍에 지붕이 날아가도 기둥이 남아있으면 집터를 찿는다. 기둥은 건축공간을 형성하는 기본 뼈대다. 기둥은 지붕의 하중을 받아서 초석(礎石)에 전달하는 수직 구조물이다. 대들보가 수평력을 받는 부재라면 기둥은 수직력으로 지붕을 받친다. 기둥이 기울거나 무너지면 집은 폭삭 내려 앉는 위험에 처한다.
 
사람 사는 일도 작은 일이 발생해 큰 일로 번져 나간다. 기둥에 나사못이 빠지면 한 쪽이 기울다가 균형을 잡지 못해 비틀거리며 와르르 무너진다. 작은 일이 틈새를 비집고 발생하면 큰 일이 벌어질 징조를 보인다.
 
불운은 ‘헐크(Hulk)’처럼 엄청난 위력과 파괴력으로 덤벼들지 않고 행복한 순간에 봄바람처럼 꽃잎을 흩어지게 한다. 빠져나갈 준비도 맞장 뜰 시간도 주지 않고 썰물처럼 빠져나간다. 한 번 내리막길로 들어서면 멈추기가 힘들다. 쓰나미처럼 몰려와 순식간에 수많은 것들을 앗아간다.
 
아버지는 평양과 부산을 오가며 사업을 해 돈을 모았다. 고향에 논과 밭을 사들여 지주가 되고 멋진 집을 짓는 것이 꿈이였다. 아버지의 꿈은 6.25 전쟁으로 하루 아침에 물거품이 된다. 몇년에 걸쳐 심혈을 기울여 지은 집에 하루도 기거하지 못하고 피난길에 오른다. 어머니는 삼년동안 삼시세끼와 참을 챙겨주며 완성된, 꿈에도 그리던 새집이 눈에 밟혀 눈물로 작별했다.
 


우리집은 낙동강을 끼고 도는 삼거리 요충지로 낙동강 방어선 전투(Battle of the Naktong River Defense Line)에서 국군과 유엔군, 북한군 사이 치열한 전투를 겪은 지역이다. 북한군들이 마을을 점령한 뒤 신축한 새 집에 진을 치고 부대 본부를 차렸는데 철군하며 불을 질렀다. 어머니는 솟아오르는 불꽃을 보고 후퇴하는 중공군 쪽으로 뛰쳐가려고 했다. “살아만 있으면 된다. 집은 다시 지으면 된다.” 아버지가 어머니 손을 잡는다. 이 장면은 수백번 더 들었는데 그 때마다 어머니 눈엔 닭똥 같은 눈물이 뚝 떨어진다.
 
우리집 대들보는 불에 그을려 타다 남은 흔적이 있었다. 전쟁 후 아버지는 아내와의 약속을 지키려고 새 집 지을 터를 남겨두고 불에 타다 남은 나무들로 방 두칸짜리 가건물을 지었다. 우물이 우리집 부엌안에 있었던 것도 그 연유다. 전쟁 후 뇌일혈로 쓰러진 아버지는 아내와의 약속을 지키지 못하고 눈을 감았다.  
 
나이 들면 남의 일이 남의 일 같지 않다. 꽃 피고 찬란했던 계절 지나고 우수수 낙엽 지는 가을이 오면 예쁘고 아름답던 꽃들도 이름없는 잡초도 말라 시들기는 마찬가지다. 어쩌면 사람 사는 모든 것, 죽고 사는 일상이 공평한 것인지 모른다.
 
미국 속담에 ‘좋은 일과 나쁜 일은 세번씩 번갈아 온다’는 말이 있다. 나는 ‘좋은 것들은 세 가지로 온다(Good Things Come In Threes)’에 믿음을 갖는다.
 
어렵고 힘든 순간도 시간은 멈추지 않고 지나간다. 부정이 긍정을 몰아낼 수 없다. 토네이도가 무섭고 두려워도 살아만 있으면 살 방도가 생긴다. 지붕과 서까래, 대들보와 천장이 날아가도 집 터만 있으면 기둥을 세우고 다시 집을 지을 수 있다. (Q7 Fine Art 대표, 작가)  
 
 

이기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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