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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호철의 시가 있는 풍경] 말의 뼈, 생각의 뼈

꽃잎이 피어나던 날
꽃잎이 떨어지던 아픈 날도  
다만 눈을 들어 바라볼 때
볼 수 있다는 것을  
다만 귀 기울일 때  
들을 수 있다는 것을  
다만 그 길 속에서만  
만날 수 있다는 것을  


숨 쉬는 순간 동안만의  
설렘이었다는 것을  
 
 
맞아, 그것은
굳이 기억해 내지 않아도
코끝이 찡하게 오는 것이지
세상은 아마 모를 거야
그렇게 깊은 것인 줄
마음 깊이 새겨진 화석인 줄
몸 속 세포들이 때 되면  
자석같이 살아나
때도 없이 당겨지는 힘
막을 수 없지
멈출 길 없지
먼 산 나무숲을 바라만 보았지
그림자처럼 비스듬히 기대어
바람에 흔들리지 않는  
견고한 바위 같은
말의 뼈, 생각의 뼈
.
.
.
따듯한 그리움이지
 
[신호철]

[신호철]

창문을 통해 아침 햇살이 따갑게 쪼인다. 눈살을 찌푸리고 떠오르는 해를 쳐다보려는 마음을 접고 눈길을 아래로 옮긴다. Deck 앞 넓은 연못에 햇살이 비쳐 잔잔한 물결이 설렌다. 작은 오두막 창가에 앉아 Aldo Leopold의 에세이와 함께 엮은 사진첩을 보고 있자니 보라의 하늘이 연분홍의 하늘로 넘어가는 풍경을 마주하고 있는 듯하다. 하늘이 내려와 춤추고 있는 착각이 들 정도의 우아한 들녘, 여러 색의 조화로운 들꽃들이 춤추듯 펼쳐진 Leopold의 정원과 커피 내음이 풍기는 창가로 몰려오는 이 아침의 설레임. 이 겹쳐오는 감흥을 무어라 표현해야 할까. 동트기 전, 해지기 전 삼십 분 전의 기적 같은 풍경은 신의 손끝에서만 만들어질 작품일진대 마주하고 있는 터질듯한 가슴은 또 어찌해야 할지.

 
시간은 흐르고 한 계절을 보내고 있다. 또 다른 계절을 기다리는 마음이란 꼭 사람을 멀리 보내고 그 사람을 기다리는 심정과 같지 않을까? 아름다움이란 멀리 꿈속 같은 아련함에서 찾지 말지니 발끝에 닫고, 손끝에 만져지는 그 순간에서 찾을진 데 우린 얼마나 많은 날들을 꿈꾸며 살아왔는지. 돌아서려는 따뜻한 그리움을 오래 간직하려 손바닥만 하게 남은 온기를 가슴에 담고 넘어가는 노을에 눈길을 주다 보면 와락 밀려오는 낙엽 같은 외로움이 흔들리며 하루가 지는 어둠 속으로 내리기도 했다.
 
Wisconsin 대학의 교수이자 자연환경가, 에세이스트, 사진작가였던 Aldo Leopold 의 〈Sand county Almanac〉의 화보 속으로 걸어본다. 새벽 산책을 하며 계절에 따라 변하는 자연을 기록한 책이다. 책의 첫 장을 여는데 새벽의 신비로움이 다가온다. 3월 새벽바람이 상쾌하게 코끝에 전해온다. 말년에 닭장을 개조한 오두막에서 Wisconsin Sand County의 자연을 담은 12달의 화보와 야생의 자연을 사랑한 잔잔한 글들이 눈길을 사로잡는다. 야생의 아름다움을, 땅과 인간의 생명 공동체로서 문화적 가치와 심미적 가치로 땅을 지키는 것이 인간의 고결함을 지키는 것임을 담아내고 있다. 불행하게도 이 책의 출간을 앞두고 자연 속으로 돌아간 Aldo Leopold의 명복을 빈다.
 
삼월의 들녘은 아직 기지개를 켜지 못한 생명들이 흙더미를 밀고 나오는 중이어서 푸석한 흙들을 밟으며 가면 발자국 뒤로 아작하는 아픈 소리가 따라온다. 깨어야 하고 눈 떠야 하기에 잠깐의 아픔은 참아야 하리. 견뎌야 하리라고 말해주지만 상대는 봄의 새싹이나 움트는 꽃눈에게보다도 견디지 못하고 참아내지 못하는 외로운 사람에게로 향하는 게 맞는 말이 된다. 오늘도 입 밖으로 내뱉은 수도    없이 많은 말들. 흩어지고 사라져 기억도 못 하는 단어들. 그 단어, 말들이 단단해져 뼈가 생기고 힘살이 붙어 명명되는 말의 뼈, 생각의 뼈, 단단하고 따뜻한 그리움이라 말해도 좋겠다. (시인, 화가)
 

신호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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