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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뜨락에서] 주인과 세입자

이곳에서 사업을 시작한 지 21년째다. 10년 리스를 받아 가게를 인수했는데 세월이 흘러 10년 리스가 끝나갈 무렵 인심 좋은 주인이 자기가 은퇴를 하겠다며 도와줄 일이 없느냐고 물었다. 망설이지 않고 리스를 연장해 달라고 했다.  
 
건강 상태가 좋지 않아 겨우 지팡이를 짚고 어쩌다 한 번씩 건물 시찰을 했다. 주인이 떠나면서 불편한 몸으로 70마일이 넘는 남쪽 뉴저지에서 택시를 타고 간호사와 함께 가게에 와서 리스 사인을 해 주었다. 너무 고마워서 리스 기간을 꼭 지키겠다고 약속했다.  
 
그런데 새 주인이 들어와 너무 긴 리스를 가지고 있다며 나를 내쫓으려고 법원에 고소했다. 이유는 세탁소에서 사용하는 퍼그 냄새가 건물에 사는 사람들에게 피해를 준다는 것이었다. 1년 동안 재판을 받으며 3번 기각을 당했다. 하지만 멈추지 않고 항소를 했다.  
 
그 과정에서 양쪽 변호사들이 극심하게 싸우다 내 쪽 변호사가 주인 변호사 사무실에서 뇌출혈로 쓰러져 사망하는 사건이 발생했었다.
 


그 뒤로 조용하게 지나는가 했는데 펜데믹이 발생했다. 5개월째 가게 문을 닫았고 일상생활이 시작되었지만 가게는 예전과 달라졌다. 경기가 회복되지 않고 지갑 여는 사람들이 줄어들고 외출을 삼가면서 극심한 경기 후퇴를 피부로 느끼며 가게 문을 열고 있다.  
 
이 와중에도 2개월 렌트는 지불하였고 3개월 렌트를 미루고 버텨오고 있었다. 지난달 갑자기 법원에서 고소장이 날아왔다. 법원 고소장은 멀리서 봐도 신물이 나올 정도다. 1년 동안 법원을 들락거린 트라우마가 남아 화가 치밀어 오른다. 며칠 방치해 두었는데 살펴보니 팬데믹 때 밀린 3개월 렌트를 지불하라는 고소장이다. 옆집 가방 가게는 4개월 전 나하고 똑같은 고소장을 받고 법원에 출두했었다. 주인 변호사와 협상이 결렬되어 재판을 받았는데 주인이 매달 렌트에 800달러를 더 내라고 해서 너무 많은 액수라고 불평했더니 500달러 더 내기로 하고 재판장 앞에서 사인했다고 했다. 가방 가게는 리스가 없고, 가게 떠날 형편이 되지 않아 주저앉기로 결정했다고 했다.
 
주인에게 전화했다. 나는 21년째 렌트를 늦게 내본 적도 없고 한 번도 내지 않은 적이 없다. 그리고 리스도 남아있다. 팬데믹 후로 회사에 출근하지 않고 집에서 일하는 사람이 많다. 손님이 절반으로 줄어들었다. 겨우 렌트 내고 리스 만료 기다리고 있다.  
 
상대방을 알면 백전백승이라는 말이 떠올랐다. 이 건물을 매매하려고 내놓은 지 오래되었다. 타운으로부터 건물 검사를 받으면 경고장과 벌금 티켓을 받는다. 내가 나가면 다른 사람이 들어오기 쉽지 않다. 경고장을 모두 해결하고 완전히 고쳐야 하는 난관이 있다는 것을 관리인을 통해 알았다. 주인은 내가 하는 말을 무시한 채 법원에서 보자고 전화를 끊었다.
 
주인과 세입자 법정은 야시장 같다. 변호사들이 주인이나 세입자 변호를 맡아 분주하게 움직인다. 또 다른 변호사는 입구에서 변호를 대변해 줄 사람을 찾는다. 변호사 필요합니까? 주인 변호사가 불렀다. 어떻게 돈을 낼 것인가 물었다. 장사가 안되어 더 낼 수 없다고 했다. 그럼 한 달에 500달러 낼 수 있느냐고 물었다. 아니요. 가게를 비워야 한다고 했다. 그러겠다고 했다. 일도 많이 했고 은퇴해도 좋다. 조금 더 일해도 괜찮고 아침에 일어나 옷 바꿔 입고 운전하는 재미도 있고 손님과 이야기하며 수다 떠는 맛도 있다. 하지만 내가 은퇴하면 어떻게 살아야 하는 계획을 세우지 않았다.  
 
또 주인 변호사가 부른다. 그럼 200달러씩 매달 낼 수 있겠느냐고 묻는다. 단숨에 아니요. 은퇴할 생각을 하고 있는데 네가 대답을 주어 고맙다. 나 은퇴하겠다고 말했다. 변호사가 주인하고 의견 교환을 하더니 갑자기 돌변하여 가게로 돌아가도 좋다고 한다. 기각되었다. 법원을 나오면서 좀 황당했지만 나도 유대인 돈을 떼어먹었다. 그것도 많은 3개월 렌트. 쥐구멍에도 볕 들 날이 있다.

양주희 /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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