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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뜨락에서] 아침밥과 커피

가게 철문을 열려고 줄을 잡아당겼다. 햇볕이 따스하게 창문으로 스며든다. 가게 문 옆으로 아파트 출입구가 있는데 움푹 들어간 곳에 홈리스가 앉아 아침을 먹고 있다. 내가 가게 문에 열쇠를 집어넣는 순간 불쑥 포장이 잘 되어있는 아침밥을 내민다. 왜 나에게 줄까 눈치를 보면서 아침밥을 가지고 왔다고 했다. 아침 일찍 출근하는 사람들이 가게 문 옆에 매일 아침 앉아서 구걸하는 모습을 보고 누군가 아침밥을 주고 간 것이다. 아침밥을 슬쩍 곁눈질하여 보니 감자, 계란, 햄, 빵 가득 담았다.  
 
아침 일찍 일어나 정성껏 집에서 직접 만들어 도시락 그릇에 담아 포장했다. 그는 인성도 착하다. 그리고 가끔 우리 가게 호위무사도 자처한다. 가게 문이 열려있으면 닫아주고 가게 앞에 쓰레기가 나풀거리면 주어서 쓰레기통에 넣어주고 손님이 시끄럽게 굴면 가게 앞에 서서 나가라고 소리친다. 그는 60대 초반 이집트 사람이다. 정신도 말짱하고 건강하다. 두 발로 걷고 어디서 배달받는지는 모르지만 매일 깨끗한 다른 옷을 입는다. 가끔 여자 코트와 잠바를 입는 것 외에는 이상하지 않고 무조건 자기 몸에 맞으면 입는 것 같다. 구걸하는 돈으로 담배를 사는 것 같고 지나가면 담배 냄새가 코를 찌른다. 항상 큰 비닐봉지를 가지고 다니면서 과일이나 포테이토칩 같은 먹거리를 봉지에 받아 넣는다.
 
대충 오늘 꼭 세탁해야 하는 옷들을 세탁기에 집어넣고 급하게 찾으러 오는 손님 옷을 구별하여 한쪽으로 정리해 놓는 사이 커피가 내려졌다. 신문을 펼쳐놓고 먹을 빵과 고구마, 계란을 나열해놓고 커피를 따라왔다. 신문을 읽으면서 아침을 먹다가 갑자기 밖에 앉아서 아침을 먹는 홈리스가 생각났다. 맨입으로 먹는 그에게 따뜻한 커피 한 잔이 그립지 않을까 생각하고 커피잔을 채워 밖으로 나가 커피를 내밀었더니 사양한다. 좀 미안한 생각이 들었다. 진즉 밥 먹을 때 곁들여 마셨으면 좋았을 걸 한발 늦은 나의 행동이 싫었다.
 
순발력이 부족해 뒤늦은 후회를 남기는 내 굼뜬 선의가 언제쯤 빠릿빠릿 움직여줄까. 그날 아침 내 가슴팍 앞으로 쑥 들어오던 아침밥의 재빠름처럼 나의 호의는 왜 빠르지 못할까. 이런 생각을 하고 있자니 이내 습관이라는 두 글자가 떠올랐다. 타인에게 선의를 베푸는 것도 일종의 습관이어서 몸에 배어 있지 않으면 그것이 적당한 타이밍에 순발력 있게 발휘되기는 어렵다는 것을 느꼈다. 주저함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었던 홈리스는 자동으로 아침밥을 내민 것은 그가 살아온 날들을 보여주는 습관이었고 그 습관이 풍족한 환경 속에서 꽃핀 것은 아닐 거라는 추측이 더해져 한층 더 고귀하게 여겨졌다. 많이 가져서 베푸는 게 아니라는 말 맞는 말 같다.
 


선의란 건 별다른 조건이 필요하지 않은 인간의 단순한 습관 내지 태도일 뿐 아닐까. 타인에게 친절 하라. 당신이 만나는 모든 사람은 저마다 당신이 모르는 힘겨운 싸움을 하고 있다. 플라톤이 한 말이라고도 작가 미상의 말이라고도 전해지는 이 문구는 대체 왜 우리가 다른 사람에게 친절해야 하고 왜 모르는 사람에게도 선의를 베풀 수 있어야 하는지를 힘 있게 설득하고 있다.  
 
홈리스에게 실례가 될 수도 있지만 내 마음을 들여다보면 가게 옆에서 아침을 먹는 홈리스가 가여웠다. 의자나 깔 거라도 깔고 앉아 먹었으면 싶었다. 나만 아는 내 힘겨운 싸움이 홈리스에게 보였을까. 그 내민 아침밥을 받아 주었으면 홈리스 마음이 나에게 조금 더 가까워질 기회를 내던진 것 같아 마음이 씁쓸하다.

양주희 /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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