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인 최건영씨, 덴버 너기츠 경기에서 미국 국가 불러
“나에게는 새로운 도전을 의미하는 시간”
최씨는 어린 시절부터 지금까지 기독교 신앙 속에서 신실하게 생활해 왔다. 기도하면서, 응답받고, 기회가 올 때마다 인생의 터닝포인트를 놓치지 않았다. 그는“나이가 60세가 넘었다. 다소 늦은감은 있지만, 언제 행복한가를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 찬양할 때, 책읽을 때, 순두부 찌개를 먹을 때였던 것 같다”면서 일상에서 소박한 행복을 찾아보았다고 한다. 이번에 소소한 일상에서 찾은 그의 행복은 노래였다. 그래서 지난 4개월 동안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고 한다. “우리 한국의 애국가는 4절까지 금방이라도 완창할 수 있는데, 미국 국가는 부를 때마다 가사를 잊어버린다. 그래서 미국 국가가 만들어진 당시의 역사를 공부하고, 그것을 이미지로 만들어 연습했다. 10월 15일부터 하루에 10번 이상씩 연습을 했다. 내게는 즐거운 시간이었다. 반주 없이 불러야 해서 첫음 잡는 연습을 많이 했고, 오후 7시 그 시간에 맞춰서 연습을 하기도 했다”고 말해, 그의 꼼꼼한 성격을 엿볼 수 있었다. 그리고 마침내 최씨는 지난 14일 경기장에서 미국 국가를 불렀다. “떨렸던 것 같지는 않고, 순간 다행히도 생각이 맑았다. 주변에서 기도와 응원을 해 주신 덕분이다”는 소감을 밝혔다.
그는 고등학교 시절 음악 교사였던 우광빈 선생님이 첫 시간에 말씀하셨던 “음악은 새로운 언어”라는 말을 평생 간직했다고 한다. 그리고 그 음악 선생님은 최씨의 음악적, 영적 기둥이 되어 주었고, 덕분에 아마추어로서 지금까지 음악을 즐길 수 있었다고 한다. 성인이 되어서 인천남성합창단에서도 잠시 활동을 했으며, 꾸준히 찬양활동도 해왔다. 하지만 최씨의 전공은 음악과 정반대의 이미지를 가진 공학이었다. 그는 인하대학교에서 화학공학을 전공, 한국타이어 재료연구소에서 근무, 1977년에 도미해 뉴욕 브루클린에서 회사를 다녔다. 이후에도 그의 삶은 도전의 연속이었고, 2000년에 다시 공부를 시작해 NYU 공과대학(폴리테크닉 대학)에서 고분자 공학 박사를 취득했다. 그리고 뉴멕시코 임산물(forest products) 리서치 센터, 루이지애나 주립대학 소속 헬스 사이언스 센터를 거쳐 콜로라도 레인보우 리서치 옵틱스에서 2015년까지 근무했다. 지금은 개인 사업을 하면서, 뉴라이프 교회 성가대 테너와 시무장로로서 교회를 섬기고 있다. 그는 평범한 일상 속에서 즐거움을 찾고, 그 속에서 끊임없이 자신의 터닝 포인트를 찾아 도전해 왔다. 오늘도 작은 도전을 찾아 행복을 담고 있을 그의 인생을 열렬히 응원한다.
김경진 기자
with the Korea JoongAng Daily
To write comments, please log in to one of the accounts.
Standards Board Policy (0/250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