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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아침에] 한 마리 나비가 되어…

김지영 변호사

김지영 변호사

“당신과 함께라면 뜨거운 한여름 단 사흘 살고 가는 나비가 되어도 좋을씨고….”  영국의 낭만파 시인 존 키츠가 열아홉 살 때 쓴 연애편지의 한 구절.  
 
여름날 모나크나비 (Monarch butterfly)는 시인의 상상보다는 오래 산다. 2주에서 6주 정도. 날이 뜨거울수록 나비의 명은 짧다. 한창 더울 때 첫 날갯짓을 하는 나비는 2주 남짓 지상에서 머문다. 짧은 일생, 그러나 뜨겁게 쿨하게 산다.  
 
한 마리 나비에게 시작 아닌 시작은 좁쌀 반쪽만 한 알. 여기서 2~3일 후 노랑, 하양, 검정 띠를 차례차례 두른 애벌레가 나온다. 애벌레는 2주 정도 폭풍 성장 (무게로 따져 처음보다 2700배), 그리고 연초록 몸체에 황금 꼭지를 가진 고치를 만든다. 고치 속에서 다시 2주 후 대변신 나비가 된다. 주홍 바탕에 검은 테 검은 줄, 고운 날개가 고치를 깨고 나온다. 성체 나비 날개 길이는 9~10cm 정도.
 
나비 알이 시작 아닌 시작인 것은 전생의 어미 나비가 있기 때문이다. 어미 나비는 알을 하나 씩 따로따로 낳아서 우유풀(milkweed) 잎 뒷면에 붙인다. 알에서 나온 애벌레는 우유풀밖에 먹지 않는다. 어미는 그렇게 300~500개의 알을 낳고 죽는다. 어미의 전생을 이어받은 나비 알은 애벌레 그리고 또 나비로 이생을 시작한다.  
 


여름 한 철 나비의 생은 화려하다. 꽃을 찾아 날아들고 짝을 만나 사랑하고 때가 되면 스러진다. 그렇게 한 세대가 가고 나면 다음 세대 나비들이 또 그렇게 살다간다.  
 
이 윤회 바퀴는 여름 한 철 빨리 구르다가 가을이 오면 속도를 늦춘다. 한 해의 마지막 알에서 생긴 나비들은 여름 세대 나비들과 달리 고행을 감수한다. 꿀을 빨고 사랑하는 일은 미룬다. 월동 장소를 찾아 긴 비행을 해야 하기 때문에….  
 
미국의 로키산맥 서쪽의 제왕나비는 캘리포니아 해안의 유칼립투스 나무숲으로 모인다. 미 동부에 사는 제왕나비는 멕시코 중부에 있는 소나무 숲에서 월동한다. 그 비행 거리는 길게는 3000마일. 귀향 비행을 하는 가을 나비는 이른 봄 월동 숲을 떠났던 나비의 5대 혹은 6대 후손들.
 
돌아온 나비들은 나뭇가지에 매달려 무리 생활을 한다. 추운 밤에는 날개를 접고 촘촘히 타원형 나비 공을 만든다. 한낮 해가 오르면 날개를 펴고 가지 주위를 맴돈다. 그렇게 절제된 생활을 하는 가을-겨울 나비들은 다음 해 봄까지 5개월 정도 산다. 춘삼월 날이 따듯해지면 미루었던 사랑을 하고 알을 낳고 죽는다.  
 
한 마리 나비의 일생은 한 무리 나비 종의 원형 궤적의 한 마디일 뿐. 그 마디 마디가 오랜 세월 멀고 길은 나비의 강이 되어 흐른다. 여름 나비는 겨울철 삶의 고단함을 알지 못한다. 겨울 나비는 여름의 풍성함을 알지 못한다. 그래도 인연 따라 나비는 오고, 머물고, 간다.  
 
애인과 더불어 두 마리 여름 나비가 되고 싶었던 시인 키츠는 스물한 살에 죽는다. 그녀에게 돌아와서 결혼하자는 약속을 남기고 로마로 떠났던 그 시인. 이미 그는 폐병 말기, 돌아올 수 없다는 것을 알고도 떠났던 길.  
 
나비들 사이에는 영웅도 없고 시인도 없다. 후세에 남겨줄 이야기도 없다.

김지영 /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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