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산책] 영원하라, 김민기의 예술정신
김민기는 위암 판정을 받고 항암 치료 중이라고 한다. 애국가 못지않게 널리 불리는 명곡 ‘아침이슬’로 살아있는 동안에 이미 전설이 된 김민기는 노래는 물론 뮤지컬, 연극 등 여러 방면에서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 인터넷 사전에는 이렇게 적혀 있다.
‘김민기(金敏基, 1951년~ )는 대한민국의 가수, 작사가, 작곡가, 편곡가이며 극작가, 연극연출가, 뮤지컬 기획자, 뮤지컬 연출가, 뮤지컬 제작자이다’.
그의 분신이나 마찬가지인 ‘학전’은 배울 학(學)에 밭 전(田), 그러니까 배움터로 '못자리 농사를 짓는 곳' 즉, 모내기 할 모를 기르는 조그만 논, 나중에 크게 성장할 예술가들의 디딤돌 구실을 하는 곳이라고 김민기는 말했다. 그런 바람대로 많은 배우와 가수들이 학전에서 자라났다. ‘학전 독수리 5형제’로 통하는 배우 설경구, 김윤석, 황정민, 장현성, 조승우를 비롯해 세계적인 재즈 가수 나윤선이나 윤도현도 이 무대를 거쳤다.
가수로는 동물원, 들국화, 강산에, 장필순, 박학기, 권진원, 유리상자, 노찾사 등 많은 예술가가 학전 소극장에서 공연하며 성장했다. 김광석은 1996년 세상을 떠나기 전까지 이곳에서 꾸준히 공연을 펼쳐 1000회를 채웠다. 학전 앞에 세워진 김광석 노래비에는 지금도 사람들이 꽃을 가져다 놓는다.
많은 기록도 세웠다. 소극장 뮤지컬의 대명사가 된 ‘지하철 1호선’은 1994년 초연 이후 4275회나 공연되면서 73만명 이상이 관람하며, 한국 뮤지컬 역사에 한 획을 그었다. 이 작품은 한국 뮤지컬 최초로 라이브 연주로 공연되는 등 숱한 기록을 세웠고, 세계무대에서도 호평을 받았다.
김민기는 한 예술가의 고집스러운 철학과 신념이 얼마나 소중한가를 실천으로 보여주었다. 해야 할 일, 필요한 일이라고 믿으면 돈이 되지 않을 것을 뻔히 알면서도 우직스럽게 밀고 나간다. 이해타산을 따져서 현실과 타협하지 않는다. 이런 소신을 그는 ‘바보 같고 미련스러워서’ 그렇게 할 수밖에 없다고 말하며 웃는다. 이런 고집불통의 김민기를 모두가 존경하는 것이다.
가장 대표적인 것이 어린이와 청소년을 위한 연극이다. 돈이 안 될 것을 뻔히 알면서도 사명감으로 공연을 계속했다.
따지고 보면, 학전 소극장을 마련하고, 극단 학전을 창단한 것부터가 그렇다. 계산했다면 애당초 가능하지 않은 일이었다. 김민기 대표는 재정난에 시달리며 자신의 음원, 저작권 수익까지 쏟아부어 학전을 꾸려왔다. 그렇게 예술적 신념을 미련하게 밀고 나가는 동안 많이 외롭고 힘들었을 것이다.
‘학전’에서 자라난 배우와 가수들은 입을 모아 “우리는 모두 김민기와 학전에 문화적 빚을 지고 있다”고 말한다. 이들이 학전의 폐관을 안타까워하고, 김민기의 전설이 영원하기를 바라는 간절한 마음으로 뭉쳐서 마지막 공연 ‘학전 어게인’을 마련했다고 한다.
널리 번져가는 안타까움과 정성이 전해졌는지, 나라에서 지원을 약속했고, 그 덕에 폐관은 간신히 면하게 되었다는 소식이 들려온다. 일단은 반갑고 고마운 마음이다. 하지만, 극장이라는 물리적 공간을 살린다고 해서, 한 예술가의 투철하고 아름다운 정신까지 살릴 수는 없는 노릇이다.
김민기와 학전의 전설은 한 시대의 굵직한 이정표 같은 것이다. 김민기라는 한 예술가의 아름다운 정신과 가치가 영원히 이어지기를, 모두의 바람대로 병상에서 툭툭 털고 일어나 다시 빛나기를 간절히 기도한다.
장소현 / 시인·극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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