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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뜨락에서] 잊혀진 책들의 묘지

몇 년 전 아일랜드 더블린 여행 중 트리니티 칼리지의 올드 라이브러리(Old Library)를 방문한 적이 있었다. 넓지 않은 어두운 도서관, 앉아서 책을 읽는 사람도 없고 사서도 한두명밖에 보이지 않았다. 누군가가 리서치를 위해 책을 찾으면 사서는 사다리를 타고 올라가 수백 년 전 셀틱어로 쓰인 고서를 갖다 준다. 도서관 안에서 봐야 하고 집으로 대출해 갈 수는 없다. 나는 순간 이곳은 ‘책들의 무덤’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한 달 전에 ‘바람의 그림자(The Shadow of The Wind)’라는 스페인 작가 카를로스 루이스 사폰(Carlos Ruiz Zafon)의 소설을 읽었다. 바르셀로나에서 고서점을 하는 아버지를 돕는 10대 소년은 ‘잊혀진 책들의 묘지(The Cemetery of Forgotten Books)’에서 ‘바람의 그림자’라는 희귀 소설을 발견한다. 이 소설은 나오자마자 누군가가 사서 불에 태운다. 마지막 한 권 남은 책을 소년이 숨기고 있는 것을 알고 그를 추적한다는 이야기다.  
 
‘바람의 그림자’라는 제목이 시적 호기심을 자극했다. 바람이 무슨 그림자를 남기는가. 지나가면 그만인데. 소설 내용과 관계없이 이런 생각이 들었다. 지난날들은 한바탕 바람이었지. 큰 바람, 작은 바람, 바람에 넘어질 뻔했지. 지금 부딪히고 있는 바람은 또 다르지. 옛날만큼 버틸 기운이 없지. 그저 바람을 피하는 수밖에 없지. 넘어지면 일어날 수 없으니까. 우리들의 과거는 그림자를 남겼고 항상 따라다니지. 뿌리치거나 지울 수가 없지. 바람의 그림자는 이렇게 생겼지.
 
내가 하는 영어 북 클럽에서 몇 달 전 자넷 스켈슬린 찰스(Janet Skeslien Charles)의 ‘파리의 도서관(The Paris Library)’이라는 소설을 읽었다. 2차대전 중 파리의 미국 도서관을 사수한 사서들의 스토리를 다룬 책이다. 그들은 나치 점령하에서 책을 좋아하는 유대인 작가에게 몰래 도서를 배달하고 전장에 있는 병사들에게 책을 부쳐 주었다. 전쟁터에서 언제 죽을지 모르는 군인들에게 왜 책이 필요합니까. 섹시한 여인의 사진이나 보내 주세요. 그래도 병사들은 달빛 아래 책을 읽으며 눈물을 흘리고 삶의 의미를 찾았다. 소설에 이런 말이 나온다. ‘책은 아이디어와 감성을 흐르게 하는 피와 마찬가지입니다. 극한 상황에서도 피는 흘러야 합니다.’ 2차대전의 와중에도 도서관은 끝까지 문을 닫지 않고 살아남았다.  
 


수년 전 공공도서관에서 폐기처분을 하는 하는 책(2권에 1달러?)을 사 왔다가 왜 쓰레기를 집에 끌고 오느냐고 야단맞았다. 쓰레기? 작가는 이 책을 쓰기 위해서 얼마나 오래 고민하고 영혼을 바치지 않았겠는가. 나는 새로 나온 책을 보기 바빠 헌책을 버렸으니 아내의 말은 틀리지 않았다.  
 
서울의 청계천에는 고서점이 있었다. 절판된 참고서적이 필요하면 고서점에 문의하는 경우가 많다. 여행하다 보면 큰 도시에는 고서점이 있는 것을 보게 된다. 죽어서 무덤에 들어가기 전 책이다. 누군가가 이 책을 사다가 집에 간직하면 묘지에서 썩어 없어지지 않을 것이다.
 
아직도 많은 사람이 책을 쓰고 있다. 요즘에는 한 생을 마감하면서 한국어와 영어로 자서전을 남기는 분들도 많다. 힘들게 쓰지만 막상 받아서는 고마워하지 않고 처박아 두는 사람이 많다. 이런 책들은 이사하거나 집 정리할 때 쓰레기로 버려져 책들의 무덤으로 갈 가능성이 크다. 책을 버리기 전 저자의 심각하도록 아름다운 모습을 연상해 주었으면 좋겠다.

최복림 /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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