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장으로 읽는 책] 이웃집 퀴어 이반지하
위장에 껍질째 들어가 있는 성게를 꺼낸다고 생각해 보자. 성게를 꺼내야 하는 것은 분명하지만, 성게는 꺼내지면서 끝끝내 위장부터 입안까지를 모조리 훑고 헐어내면서 나올 것이다. 그래, 꺼냈으니 이제 성게가 없다, 라고 하기에는 이미 내 속은 성게의 흔적이 완연하다못해 피를 펄펄 흘릴 것이다. 그 피는 왠지 철철보다는 펄펄이다. 끓어나오는 피일 것이고, 또 그 피는 피대로 내부 장기를 덮어 계속해서 안쪽 면을 태울 것이다.이반지하 『이웃집 퀴어 이반지하』
어린 시절 작가가 겪은 트라우마에 대한 글이다. 잔혹한 기억이 남긴 생채기를 이토록 선명하게 묘사할 수 있을까.
본명 김소윤, 독보적인 퀴어 퍼포먼스 아티스트 이반지하의 에세이집이다. 인용문처럼 혈관을 팽팽하게 긴장시키는 글부터 머릿속에 ‘ㅋㅋㅋ’가 무한 재생되는 글까지, 에세이스트로서의 재능도 확인시킨다.
‘퀴어’라는 정체성에 대해서는 이렇게 썼다. 그에게 이반지하는 “닉네임이나 부캐 같은 게 아니라, 한국에서 퀴어 예술가로 산다는 것 자체”다. “이반지하는 혼돈이다. 이반지하는 간단명료하게 정의되지 않는다. 이반지하는 정의할 수 없고 어떤 카테고리 하나에 들어가고 싶지 않은 모든 사람들의 마음을 대변하는 것은 아닐까. 아무렇게나 이랬다저랬다 하는 그런 마음들이 만나는 곳이 이반지하인 것은 아닐까.” “이반지하는 되는 게 아닙니다. 태어나는 겁니다. 날 때부터 많은 갈등과 트러블을 안고 이 땅에 태어나는 겁니다. 폭탄처럼 탁 떨어지는 거예요.”
양성희 / 중앙일보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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