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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망경] 딴소리

사람들은 딴소리를 곧잘 한다. 시인들이 완곡한 표현을 시에 쓰는 것도 정치가들의 입장문도 딴소리의 원칙을 따른다. 우리는 모두 우아한 말을 하고 싶다. 언어를 사용하는 만물의 영장인 인간의 특권이다.
 
사전은 딴소리를 ①주어진 상황과 아무런 관련이 없는 말 ②미리 정해진 것이나 본뜻에 어긋나는 말이라 엄격하게 풀이한다. 재미있다. 소리(sound)를 말(word)로 업그레이드시키는 사전의 자상한 마음가짐이.
 
대화 도중에 화제의 본질을 잠시 벗어나는 것을 애교로 볼 수도 있지만 내 환자들이 하는 딴소리는 ‘말’이 아닌 ‘소리’로 들리기가 쉽다. 북소리나 장구 소리처럼! 증인석에 버티고 앉아 자꾸 딴소리하면 판사가 법정모욕죄 선고를 내릴 수도 있다. 심한 딴소리는 내 환자들의 특권이다. 동문서답의 병적인 쾌감이다.
 
영어에는 딱히 ‘딴소리’라는 관용어가 없다. 화제를 바꾼다는 설명조의 문장이 있을 뿐, ‘Why are you changing the subject?’ 하는 식의 구질구질한 질문에는 ‘너 왜 딴소리야?’ 하는 우리말의 짧고 따끔한 맛이 없다. 서구인들은 동방예의지국 사람보다 어수선한 대화법에 익숙한 체질이 아닌가 싶지.
 


당신은 왜 딴소리를 하는가. 자신을 방어하기 위한 의도적인 수법이면서 남의 비판을 받고 싶지 않은 마음인가. ‘내로남불’이라는 자기 합리적 정신상태와 더불어, 나는 다 좋고 남들은 다 나쁘다는 유아적 사고방식. 사자성어의 권위의식에 탐닉하는 한국인들이 2020년에 만들어 낸 아시타비(我是他非)라는 신조어가 네이버 사전에 늠름하게 올라와 있다. 마치 무슨 염불 소리처럼 들리면서.
 
묻는 말에 제멋대로 응수하는 딴소리의 극심한 예로 ‘word salad’(말비빔, 워드 샐러드)가 있다. 생각의 혼란 때문에 말과 말의 파편들이 일관성 없이 튀어나오는 정신분열증의 보증마크 증상으로 손꼽힌다.
 
단어 하나하나가 분명하게 발음되는 말의 흐름은 청산유수처럼 시원시원하게 들리지만 무슨 말인지 도통 알아들을 수 없는 대화가 오간다. 자신만만한 문장의 나열을 아무도 이해 못 한다. 같은 발음과 반복되는 운율 감이 은근히 기분 좋게 들릴 정도다. 병동환자가 리드미컬하게 단숨에 내뱉는 말이 이렇다. “내가 필요한 약은 ‘penis medicine’이야. 내가 받은 처방은 ‘snake medicine’, ‘poison medicine’이라니까.”
 
나르시시즘 성격장애자들이 도처에 즐비하다. 정치계가 그들의 유일한 서식처. 명실공히 딴소리의 명수인 그들은 두뇌 장애가 전혀 없는 어엿한 정상인들이다. 타인의 우월성을 결코 용납하지 않는 ‘self-love(自己愛)’의 오만무도한 달인들!
 
나르시시스트는 지성적인 비판을 감당하는 능력이 갑남을녀에 비하여 심하게 결핍된 상태에서 남들을 깔보고 멸시하는 마음 씀씀이만 돈독할 뿐, 독이 오르면 과대망상과 피해망상적 발언도 난발하는 자애주의자다.
 
확답을 회피하는 정치가들이 딴소리에 열중한다. 지루한 간 보기 작업. 직언하면큰일 난다는 마음이지만 간간 과감한 발언을 터뜨리기도 한다. 사람의 생각은 영구성이 없다는 진실로서 남들을 지루하지 않게 하는 변덕의 미덕이 고맙기조차 해요.
 
딴소리의 끝이 허위진술과 슬그머니 맞닿는다. 딴소리와 가짜뉴스가 득세하는 세상에 정신질환자들에게 폐쇄 병동이 해답일 수 있듯, 거짓말 전문가들은 사회적 폐쇄공간인 감옥이 해결책이라는 생각에 잠긴다. 짓궂은 겨울 날씨처럼 조석으로 돌변하는 사람 마음의 일시적 은신처로서.

서량 / 시인·정신과 의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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