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린광장] 계묘년과 교묘교변(巧卯巧辯)
지난해 주인공이었던 토끼는 슬기롭지만 잔꾀도 많은 동물로 비유된다. 한국의 토끼전을 보면 용궁에서 죽을 위기를 넘긴 토끼가 “만산 풍경을 다시 보게 될 줄 뉘 알았으며, 옛날 먹던 산과일을 또 한 번 먹게 될 줄 뉘 알았던고” 라고 떠들어대다가 그만 독수리한테 잡힌다. 공중에 올라간 토끼는 용궁에서 가져온 의사 주머니를 바위 밑에 숨겨 놓았다고 독수리를 꾀어 바위 밑으로 내려가자마자 탈출해 바위 밑으로 깊숙이 들어가 목숨을 건졌다.
사람들은 올해가 60갑자 중 푸른 용을 뜻하는 갑진년이라고 의미를 부여한다. 그런데 용은 좋은 의미의 상징도 있지만 반대로도 쓰이고 있어 푸른 용의 해를 마냥 좋아만 할 수는 없을 것 같다. 다만 용은 상서로운 동물로 임금을 상징하기도 한다. 용이 매우 중요하게 쓰인 문헌이 있는데 바로 ‘용비어천가(龍飛御天歌)’다. 세종 27년(1445년)에 쓰인 용비어천가는 조선 건국의 위업과 선대 육조(六祖)의 덕을 칭송하는 것으로 최초의 한글 문헌이다. 여기서 세종 임금을 지칭한 용이 쓰여진 것이다.
여기서 토끼의 교번(巧辯)을 한 번 들어본다. 토끼는 임인년(2022년)과 함께 먼저 떠나버린 호랑이가 보고 싶어 그를 만나려고 숲으로 찾아갔다. 한데 불이 나 모든 동물이 달아났고 호랑이도 간신히 피해 숲에서 물을 마시고 있었다. 이를 본 토끼가 중얼거렸다. “난세야, 난세!” 이 소리를 들은 호랑이가 외쳤다. “이놈아! 내가 누구신 줄 알 텐데 내 턱밑에까지 와서 물을 마신단 말이냐!” 이 때 토끼가 말했다. “호랑이 아저씨! 우린 피난길에 아저씨 눈치를 봐야겠지만 아저씬 무서울 게 하나도 없을 텐데 혹시 머리에 뿔이 있고 몸통은 뱀과 같으나 네 다리에 날카로운 발톱이 있는 용이 무섭지 않나요?”
이 소리를 들은 호랑이는 “숲속의 왕자인 내가 세상에 있지도 않은 그따위 용을 무서워할 것 같으냐? 사람들은 마술쟁이 같은 용을 무서워할지 모르지만 난 하나도 무섭지않다. 난 사람이 무섭단 말이다. 이 맹추야, 강원도 포수가 나타나면 누굴 쏘겠느냐, 널 쏘겠느냐 날 쏠 게 아니냐!”고 말했다. 호랑이가 사라지자 토끼는 “힘만 세면 단 줄 알지만 나처럼 힘이 약해도 슬기롭게 사는 게 장땡인 거야.”
별주부전에 나온 것처럼 슬기는 착한 데에 쓰이지만 잔꾀는 모진데 쓰인다. 잔꾀를 부리는 사람이 많으면 사기와 부정 등 좋지 않은 일들이 생기기 마련이다. 옛 로마 장군 케이토는 “슬기로운 사람은 어리석은 사람한테서 더 많은 것을 배운다. 어리석은 사람이 저지른 잘못을 되풀이하지 않으려는 까닭”이라고 말했다.
상상 속 동물인 용보다 슬기로운 토끼의 이야기에서 배울 점이 꽤 많은 것 같다. 2월 10일이면 진짜 용의 해가 시작된다. 갑진년의 모습이 어떻게 나타날지 꽤 궁금해진다.
윤경중 / 목회학박사·연목회 창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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