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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호철의 시가 있는 풍경] 폭설

눈길을 헤치고 돌아와 목이 길어져 당신이 있는 서쪽 하늘만 바라보고 있어요. 좀 회복되면 함께 걷자던 친구는 생각보다 얼굴은 괜찮았고 조금 마른 듯 했지만, 그 친구 목이 길어져 삶이 깊어졌더라고요. 모두 깊은 동굴에 머무르고 싶지 않은 듯 출구를 찾으려 두리번대고 목소리도 발걸음도 느려진 저녁이었어요. 시킨 생선찌개는 어찌나 짜던지 돌아와 내 마음처럼 애꿎은 냉수만 찾았네요.  
 
그나저나 오늘은 눈이 십여 인치나 쌓여 솜바지 챙겨 입고 창가에 앉아 지내는 게 제일 행복할 것 같기도 하여 빨간 열매 가득한 창가 블라인드를 올렸어요. 빛이 창문을 통해 밀려 들어오는 거예요. 거리도 나무도 지붕도 참 밖은 온통 눈 나라 하얀 고요가 시카고 하늘 위에 가득하네요. 근데 궁금해요. 당신을 후벼 파 끙끙 앓아 눕게 만든 그 시집, 선물로 내게 준다던 시집이 〈혼자 가는 먼 집〉이라는데 얼마나 먼 집인가? 꼭 혼자 가야 하나? 생각하며 눈 나라에서 안간힘으로 버티고 있어요. 목이 긴 짐승이 되면 멀리도 잘 보이려니 했지요. 도무지 보이지 않는, 그래서 만날 수 없는 평행선이 되어 있지요.  
 
애꿎은 눈가를 훔치는 밤, 눈은 내리는데, 쌓이는데 눈 내리는 밤에 서로를 향해 걷다 보면 발끝이 이어지는 어디쯤에서 다시 지워지는 발 밤새 눈길에 발자국을 내고 지우고 당신을 향해 눈 속에서 헤어나지 못하는 동안, 사랑하는 동안 나는 당신 손에 빚어지고 당신 사는 하늘을 자꾸 바라보아요. 바라본 곳이 길이 되어 나는 시들다가 다시 피어나기도 하지요. (시인, 화가)
 
[신호철]

[신호철]

 
눈 덮인 계절


모습을 감춘 그대
치열하게 싹을 내미는 봄보다
편안한 호흡으로 행복하신지
나의 몸 어딘가에도
감추어진 마음
그 속 시간을 들여다보면
시간은 움직이지 않는다는 생각
존재하는 건
잘게 잘려져 다가오는
작은 조각의 현재일 뿐
또 한 살을 먹고 있다.
오래 살아가고 있다
오래 그리워 오래 걸었다
호수 밀려오는 소리
정겹던 날들이 부른다
 
 
눈 내리는 밤
한 해도 그렇게 지나가고
새날도 그렇게 오고 있지 않나
온몸을 기울여야 하는 것
이 순간을 사랑하는 것
사랑하는 동안 행복하기 위해서
그리하여
모든 나머지 것들은
그냥 지나치게 할 일이다
욕망을 덜어내는 시간
행복은 걸어 들어온다.
다시 눈길이다
사랑한 만큼
비워진 만큼
 
 

신호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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