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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영웅전] 구텐베르크의인생 유전

1440년대 어느 날 프로이센 마인츠의 한 집에 귀족들이 모여 도박을 하고 있었다. 30대 청년 구텐베르크는 도박판에서 연신 돈을 잃고 있었다. 귀족 집안에서 태어난 그는 무슨 사연이 있었던지 어머니의 성을 따랐다. 돈을 잃고 집에 돌아온 그는 돈을 딸 궁리는 하지 않고 도박용 골패(骨牌)에 새겨진 글씨와 그림을 도장처럼 만들면 글씨를 대량으로 박아낼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는 곧 나무에 알파벳을 새겨 도장을 만들기 시작했는데, 이것이 서구 최초로 만든 목판활자다. 그러나 그는 자금이 없었다. 휴머리라는 이웃집 부자 금은 세공업자를 찾아갔다. 이 사람은 사업 두뇌도 비상한 인물이었다. 휴머리는 구텐베르크를 적극적으로 지원했다. 나무 활자가 마멸되자 그들은 세공 기술을 이용해 구리 활자를 만들어 성경을 찍기 시작했다.
 
최초로 만든 성경책은 양피지에 36행에서 시작해 42행을 거쳐 46행을 찍은 것인데 이를 마자린 판이라고 부른다. 구텐베르크는 떼돈을 벌었다. 그러다가 의외의 복병을 만났다. 휴머리의 배신이었다.
 
자금주가 배신하자 방법이 없었다. 구텐베르크가 낙심해 있을 무렵 낫소의 주교 아돌프 2세가 마인츠 시장으로 부임해 왔다. 독실한 기독교 신자인 그는 구텐베르크를 찾았다. 아돌프 2세가 성서 제작과 판로까지 도와줘 구텐베르크는 영화를 누리며 말년을 보냈다. 그 성경이 지금 미국 의회도서관 복도에 전시돼 있다.
 


구텐베르크의 일생을 보노라면 한 인간의 성공에는 반짝이는 아이디어가 먼저이며, 세상살이에 한때 실수를 하더라도 받아줄 곡예사의 보호망이 필요하다. 그러나 독자들은 씁쓸할 것이다. 인류 최고의 문화인 인쇄술이 도박판의 골패에서 연유했다는 사실과 그렇게 되기까지 기만·배신·좌절, 그리고 인정가화(人情佳話)가 두루 섞여 있기 때문이다. 그러니 청년들이여, 낙심할 것 없다. 그대에게도 그런 행운이 올 테니까.

신복룡 / 전 건국대 석좌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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