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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기희의 같은 하늘 다른 세상] 두렵지만, 다시 시작이다

이기희

이기희

바쁘면 더 빨리 일한다. 눈치 보고 주저할 시간 없다. 할 일이 없을 때보다 일거리가 많을 때 능률이 오른다. 오늘 당장 꼭 해야 할 일거리는 내일로 미룰 수 없다. 죽자 사자 하는 수밖에 없다. 선택지가 한 개뿐일 때는 젖 먹은 힘을 다해 답을 찾는다. 축 늘어져 있으면 고무줄처럼 더 늘어져 꼼짝달싹 하기조차 싫어진다.  
 
나이 들었다고, 은퇴했다고, 직장을 그만 뒀다고, 형편이 안 된다고. 실력이 모자란다고, 시간이 없어 망설이는 사람은 형편이 넉넉하고, 시간 넘치고, 젊고 생기 펄펄해도 가는 세월 붙잡고 원망만 한다. 인생은 짧고 할 일은 너무 많다. 시작은 언제나 가능하다.  
 
역사는 불가능을 가능하게 하는 용기 있는 사람들의 발자취를 기록한다.  
 
스페인 정부로부터 ‘대양에서 섬과 본토를 찾아 획득하라’는 임무를 받은 콜럼버스는 세 척의 작은 배의 선단에 120명을 싣고 중국과 극동을 목표로 서쪽으로 항해한다.  
 
유럽인들은 마르코 폴로의 동방견문록을 통해 동방문화를 접하고 아시아는 매력 있는 새로운 세계로 부상하게 된다. 긴 여정 끝에 컬럼버스는 1492년 바하마 제도의 한 섬에 상륙하지만 자신이 신대륙을 찾아냈다는 사실을 알지 못한다.  
 
당시 유럽사람들은 지구가 평평하며 대서양 서쪽 너머로 낭떠러지가 있다고 믿었기 때문에 그의 항해는 무모하고 어리석다고 생각했다. 컬럼버스의 결단과 용기는 신대륙 아메리카를 발견하는 거대한 역사의 시발점이 된다.  
 
터닝포인트는 생의 곳곳에 지뢰처럼 숨어있다가 찬란한 불꽃놀이로 폭죽을 터트린다. 게으르고 준비가 안 된 사람은 낮잠 자며 딴지 걸다가 서론만 대충 읽고 본론은 놓치고 결론은 흐지부지, 두려워서 목표에 도달하지 못한다.
 
시작을 안 하면 아무것도 일어나지 않는다. 앞만 보고 가는 것도 중요하지만 뒷걸음 치다 쥐 잡는 일도 생긴다.
 
20년째 매주 칼럼을 쓰게 된 것은 정말 우연한 일이다. 자전소설 두 권과 자전에세이 ‘여왕 아니면 집시처럼’이 출간되고 신문사에서 칼럼 권유가 있었다. 책 3권을 낸 것도 기적인데 칼럼이라니! 놀라고 걱정돼서 친하다고 믿었던 베스트셀러 작가에게 조언을 구했더니 단칼에 제압, 경험과 실력, 인지도 부족을 이유로 자기처럼 유명한 작가도 매주 6개월 쓰는 것도 부담 되니까 아예 시작을 말라고 타이르듯 만류했다. 가만히 두면 잘 굴러가는데 누가 발길질 하면 옆으로 튀는 게 나의 큰 장점(?)이다.  
 
죽기 아니면 까무러치기로 시작해 강산이 두 번 바뀌는 세월 동안 한 주도 빠짐없이 칼럼을 쓴다. 어머님 장례식 날도 수술을 받은 때도 칼럼쓰기를 멈추지 않았다. 칼럼쓰기는 내 인생의 나침반이고 작은 지도다. 어디서 시작해서 어떻게 끝을 맺을 것인지 어디쯤에서 돌아가야 하는지를 말해준다. 매듭을 풀고 인연을 접고 헤어질 결심 하고 새로운 얼굴을 만나는, 허허로운 벌판에서 ‘내일’이라는 단어에 희망을 적는다.
 
손녀 딸들이 자기 방에 걸 그림을 그려달라고 주문했다. 내용이 너무 구체적이라서 긴장된다. 콩알 만한 것들이 좋아하는 색깔 일일이 나열하고 일곱 색 무지개 위를 나는 핑크색 나비를 꼭 그려달라는, 아주 특별한 주문이다. 나비 그려 본 게 수십년이 넘었다. 부지런히 연습해서 할머니 체면 안 깎이게 명작(?)을 그릴 결심을 한다.  
 
시작이 있으면 끝이 있다. 태초에 생명을 불어넣어 주신 분이 있었다. 당신의 하루가 지친 날의 끝이 아니라 용기 있는 시작이 되기를, 새해 새날은 아주 작은 것들 속에 기쁨이 넘치는 빛나는 날들 되기를 간구합니다. (Q7 Editions 대표, 작가)
 

이기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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