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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칼럼] 삶의 현장, 아름다운 이야기보따리

김형재 사회부 부장

김형재 사회부 부장

인기 TV 시리즈인 스타트렉에 우주선 엔터프라이즈호가 고장으로 한 행성에 불시착하는 내용이 있다. 초기 문명을 이룬 낯선 행성에 도착한 탐험대는 우주선 수리를 위해 원주민인 외계인과 협상에 나선다. 값진 보석과 무기 등을 제안해보지만 거절당하고 만다. 원주민이 최고로 여기는 것이 무엇인지 알 길이 없다. 엔터프라이즈호는 우여곡절 끝에 수리를 마쳤고 새로운 탐험을 떠난다. ‘대체 원주민이 원한 것이 무엇이었냐’는 한 대원의 질문에 커크 선장은 “이야기보따리”라고 답한다.    
 
스타워즈, 닥터후 시리즈와 함께 세계 3대 SF시리즈로 유명한 스타트렉(Star Trek), 어릴 때 본 이 에피소드가 이상하게 뇌리에 남아 있다. 값비싼 보석도, 최첨단 무기와 기술도 아닌 이야기보따리를 원했다는 원주민 외계인의 요구가 도무지 이해 안 됐었다.  
 
올해 abc뉴스, 버즈피드 등 주요 매체는 ‘코리아타운 드리밍(Koreatown Dreaming)’이란 책을 주목했다. 다큐멘터리 사진 촬영이 특기인 임마누엘 한 작가는 2020년부터 1년 동안 LA와 뉴욕 한인타운 곳곳에서 생업에 종사하는 한인 자영업자의 사진과 이야기를 책에 담았다.
 
256쪽짜리 책에는 LA와 뉴욕에 사는 한인이라면 한 번 이상 들렀을 한인 업소의 현장 사진과 그 업소의 사장님들이 미국까지 와 살게 된 사연이 기록됐다.
 


책 속 주인공들 이야기는 살갑다. 표지 사진을 장식한 ‘에덴 푸드’ 양성래씨. 그는 이민 초기 과일가게에서 일을 했다. 당시 그는 과일 하나를 팔기 위해 렌트비, 전기료, 인건비 등 운영 비용이 너무 많이 든다는 사실이 답답했다고 한다. 결국 그는 과일트럭 허가증을 받아 장사를 시작하면서 LA한인타운 로데오 갤러리아 출입구 한쪽을 지키는 터줏대감이 됐다. 심지 굳어 보이는 표정의 그는 새로운 삶을 꿈꾸며 열심히 시민권 인터뷰 준비를 하고 있다고 한다.  
 
LA한인타운의 명소가 되다시피 한 ‘김스전기’. 김대순 대표의 자손인 신디 김씨와 스캇 김씨가 사업을 이어받고 있다. 진열장에서 온화하게 웃고 있는 모습이 담긴 신디씨는 ‘한인에게 꼭 필요하고, 한국의 향수를 달랠 수 있는 품질 좋은 제품을 싸게 판다’는 창업자의 경영철학과 정신적 유산을 이어가겠다고 다짐한다.  
 
LA한인타운 ‘1.2.3 유치원’ 이진경 원장. 1980년대 남편을 따라 이민 후 한인 어린이들을 위해 유치원 문을 열었다. 이 원장은 유아교육에 대한 기본 지식부터 공부하면서 아이들에게 가장 편안한 교육 환경을 만들기 위해 노력했다고 한다. 그는 다문화 사회인 미국에서 자라는 아이들이 한인 정체성을 몸으로 배우고, 서로 존중할 줄 아는 사회 구성원이 되길 희망했다.  
 
싱가포르에서 성장해 미국에 이민 온 임마누엘 한 작가는 “이민 역사가 담긴 한인타운 사람들의 모습과 이야기를 책(영어로)으로 남겨, 다음 세대가 나아갈 길을 되새길 수 있게 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처음에는 많은 한인 자영업자가 한 작가의 작업에 경계심을 보였다고 한다. 하지만 지금은 본인의 모습과 이야기를 사진과 글로 남겨준 ‘진심 어린 관심’에 고마움을 보인다고 한다.  
 
이야기엔 지적 생명이 자아를 지닌 순간부터 쌓아온 상상과 희망이 담겨 있다. 그런 이야기는 역사 기록과 함께 삶이란 무엇인지, 우리는 어디에서 왔고 어디로 가는지를 묻는 성찰의 시간을 선물한다. 희로애락이 담긴 이야기를 접하며 각자의 세상을 되돌아보고, 꿈꾸는 미래의 모습을 장식하기도 한다. 문명의 찬란함은 결국 다사다난한 삶의 궤적, 이야기로 꽃피우는 셈이다. 한인사회, 우리네 존재와 삶도 다지고 다져 아름다운 이야기보따리가 되면 좋겠다. 

김형재 / 사회부 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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