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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 주례사

이십여 년 만에 귀국했던 1990년, 홍두깨 같은 결혼주례를 생각지 않게 한 적이 있다. 대학교수는 결혼주례 청탁이 많은 위치다. 나도 예외는 아니었다. 주례 경험이 없던 나는 엄두도 못 내는 의뢰를 받을 때마다 늘 사양하기 바빴다.  
 
어느 날이다. 제자 K군과 그의 부모가 간곡하게 주례를 부탁했다. 식순에 따라 주례자가 할 일은 신랑·신부 문답, 선물 교환 후 축사 한 마디와 성혼 선포가 전부라고 했다. 계속 거절했지만 “아주 간단합니다”라는 통사정에 마음이 흔들려 엉겁결에 수락하고 말았다. 하지만  두려움과 걱정이 태산처럼 밀려왔다.  
 
결혼은 한 가정을 이루는 경사인데 주례가 허수아비 같아서는 안 된다는 책임감에 걱정이 이만저만 아니었다. 하지만 이왕 하기로 했으니 마음속에 담아 온 생각을 전하기로 마음먹었다.  
 
처음 해보는 일이라 견학이 필요했다. 시간을 내 결혼식장 몇 군데를 점잖은 양복 차림으로 구경 다녔다.  
 


주례사의 시작은 틀에 박힌 내용이었다. '천지 만물이 생기를 돋구는 이 화창한 날에 공사다망하신 중 이렇게 왕림하여 주셔서 감사합니다.' 이 말은 사회자나 양가 대표가 할 인사말이었다. 어느 교수라고 하는 주례자는 신랑이 자기 제자이며 수재라는 칭찬만 늘어놓고 있었다. 다른 주례자는 미리 준비한 서너장의 쪽지를 주머니에서 꺼내더니 한바탕 연설문을 읽고 있었다. 목사인 한 주례자는 성경 말씀의 한 구절을 읽고 지루하게 설교하고 있었다. 십계명 같은 결혼 계명을 한 가지씩 일러주지만 그 내용이 신랑·신부의 머릿속에 들어갈 리 없어 보였다. 모든 약속을 이행하기엔 너무 벅찬 어깨 짐이었다. 또 '…당부한다', '…기원한다', '부모님 은혜에 보답하라' 등등 이래라저래라 하는 말들이 그럴듯하게 들리긴 했지만 신랑·신부에겐 부담스러웠을 것이라 생각됐다.  
 
마침내 결혼식이 진헹됐다.내가 주례사를 할 차례가 왔다. 결혼식을 축하한다는 인사에 이어 곧장 벼르던 말을 하나씩 내놓았다. 내용은 이랬다. 예로부터 부부 일심동체라 하는데, 나는 부부이심 이체라 외쳤다. 두 사람이 한 사람같이 화목하다는 뜻인 줄은 알겠지만, 실제로 둘이 하나가 되려면 한쪽이 거의 죽어야 아무 마찰과 탈 없이 무난할 것이라고 하였다. 부부는 서로 다른 개성과 역할을 갖고 있으며, 인연으로 만난 두 남녀는 각별한 친구이기도 하다. '각자의 행복은 어디에 있느냐?' 반문하면서 옛 여인들의 한(恨)의 원인이 무엇이었는가를 불쑥 들먹거렸다.  
 
두 사람의 관계가 동등해야 상의도 하고, 새로운 발상도 나온다고 했다. 그리고 백지장도 둘이 맞들면 쉽다는 속담도 있지 않으냐는 등의 말을 이어갔다. 그리고 뚱딴지같은 말도 덧붙였다. 대부분 '머리카락이 파 뿌리가 될 때까지 함께 살아라'라고 하지만 나는 너무 무거운 책임이 되고 평생 가두는 사슬 같으니 차라리 풀라고 했다. 그리고는 서로 자유로이 돕고 위로하고 노력하는 편이 좋겠다고 덧붙였다.  
 
철학자 소크라테스 같은 남편과 살던 선녀 같은 부인은 크산티페(Xanthippe)처럼 악처가 되었으며, 소피아(Sophia) 같은 악명 높은 처를 만나면 남편은 대문호 톨스토이처럼 맷돌을 목에 걸고 가출하여 객사하게 된다.  
 
부부는 처음부터 '죽자 살자' 하는 사랑보다, 존경과 신뢰 그리고 사랑의 순서가 바람직하다고 했다. 사랑은 불같아서 꺼지지 않게 계속 불을 지펴야 한다. 천생연분은 설탕에 물을 붓든, 물에 설탕을 타든 서로 녹아 단물이 된다. 하지만, 본연이 다른 물과 기름은 쉽게 혼합되지 않는다. 그렇지만 불을 가하면 뜻밖에 잘 섞이니 꾸준히 달리는 기차 화통같이 따듯한 열기를 잊지 말라고…. 식으면 물과 가름은 서서히 따로 놀게 된다는 자연 이치의 예를 들었다.  
 
드디어 결혼식이 끝나고 식장을 돌아보니 심상치 않은 눈총의 구름이 닥쳐오는 것 같았다. 혹시 실언했나 싶기도 했다. 그런데 “교수님, 참 좋은 말씀 주셨습니다.”라고 인사를 하는 게 아닌가.  그러나 다른 반응도 있었다. 흰 두루마기 차림의 한 분은 “주례 선생, 신혼부부에게 그런 말을 하면 안 됩니다. 잘 살라고 명심시켜야죠”라며 언짢은 표정으로 핀잔하는 게 아닌가.
 
물론 이들 부부가 잘 살기를 바라지만 주례자가 잘살라고 다짐한들 그대로 이뤄질까?  나는 보장되지도 않을 껍데기 주례사를 하고 싶지 않았을 뿐이었다.
 
그런데 내 주례사가 어느 기자의 귀에 들어갔는지 '여성'이라는 신문에 긍정적 평가와 함께 내용이 실리기도 했다. 이례적인 주례사라는 이유였다. 첫 번째 주례의 민망함 때문인지 두 번 다시 주례를 하지 않겠다고 결심했다.  
 
세상이 많이 달라져 요즘은 직업적인 주례자도 있다고 한다. 또 양가 부모들이 직접 덕담과 부탁의 말로 주례를 대신하는 것이 유행이란다. 과거 별나게 했던 주례사의 기억이 아련히 떠오를 때면 그 부부의 가정에 늘 행복이 함께 하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정복성 /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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