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산책] 화캉스를 아시나요?
‘화캉스’란 화장실+바캉스의 줄임말이라고 한다. 호캉스(호텔+바캉스)와 같은 맥락이다. 구체적으로 요약하면, 화장실에 간 남편이 짧게는 30분, 길면 1시간씩 ‘화장실에서 바캉스를 즐긴다’는 뜻이라고 한다. 원래는 회사 근무 중에 몰래 화장실에 가서 쪽잠을 자거나 휴대폰을 보며 쉬는 것을 일컫는 신조어였는데, 최근에는 집에서도 화캉스를 하는 경우가 늘었다는 것이다.
화캉스가 문제가 되는 것은 화캉스를 즐기는 남편들이 대체로 맞벌이 부부로 경제활동과 육아, 가사를 아내와 함께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라고 한다. 예전에는 남자는 밖에 나가 일해서 돈 벌어오고, 여자는 집안 살림을 도맡아 했지만, 지금은 그런 시대가 아니다. 부부가 맞벌이를 해야 하는 세상이다. 그러니 집안일이나 아이 기르기도 부부가 나눠서 할 수밖에 없는데, 화장실에 가면 함흥차사이니 불평이 나오게 마련이다. 그래서 어린 자녀를 키우는 젊은 부부들 사이에서 ‘화캉스’가 뜨거운 논쟁거리가 된다는 것이다.
“가부장 시대 아버지를 보고 자란 지금의 젊은 아빠들의 입장에선 과거와 달리 경제활동에 가사와 육아까지 담당해야 하니 더 힘들고 벅차게 느낄 수 있다”라고 임상심리 전문가들은 분석한다. 그래서 화장실로 피할 수밖에 없다는 설명이다. 화캉스는 자신의 공간과 프라이버시를 지키기 위한 남자들의 처절한 몸부림일 수 있다는 이야기다. 짠하다.
“때때로 혼자 있고 싶은데, 집에서 그나마 맘 편히 있을 공간은 화장실밖에 없다”라는 것이 남편들의 푸념이다. 건축가들은 한국의 대표적 주택구조인 아파트에는 집안에 남편만의 공간이 마땅하게 없기 때문에 이런 문제가 생기는 것이라고 설명한다. 간단하게 해결할 수 없는 딱한 현실이다.
“지금 한국 남성들은 실컷 자신을 펼치고 드러낼 그들만의 공간이 없다. 아쉽게도 집은 아내의 공간에 가깝고, 방이 있지만 아이들에게 하나씩 주고 나면 남자들의 방은 없다.”-심리 상담가 이문희 교수의 ‘남자의 공간’에서
화캉스마저 여의치 않게 되면 ‘술캉스’가 시작된다. 일이 끝나도 바로 집에 들어가지 않고 술집을 맴돌다 느지막이 기어들어가 잠만 자는 것이다. 집에 가봤자 마음 편히 쉴 곳이 없으니…. 그렇게 가장이 아닌 처량한 ‘하숙생’으로 전락하는 것이다. 인생은 나그네길 어디서 왔다가 어디로….
그래서 상담전문가들은 조언한다. 남편의 화캉스에 바가지를 긁어대지 말고, 모른 척하거나 귀엽게 봐주는 것이 가정 평화에 도움이 된다고.
이왕에 ‘화캉스’라는 비난을 들을 거라면, 화장실에 대한 생각을 긍정적으로 바꿀 필요가 있을 것 같다. 휴대전화 노려보며 게임이나 하는 것으로 그치지 말고, 피가 되고 살이 되는 좋은 책을 제대로 읽으면 어떨까? 건축가 김수근 선생의 말씀처럼 화장실을 수준 높은 독서실로 만들자는 말이다.
오래전 김수근 선생은 “화장실을 독서실로 만들자”는 제안을 해서 상당한 박수를 받은 적이 있었다. 집중해서 책을 읽을 수 있는 한갓진 공간으로 화장실만 한 곳이 없다는 이야기였다. 하지만, 시기상조 너무 빠른 제안이었다. 그 당시의 화장실은 도저히 책을 읽을만한 공간이 아니었다. 변소, 뒷간 등으로 불리던 시절이었으니 말이다. 물론 지금은 완전히 달라졌다. 지금 한국의 화장실은 단연 세계 최고 수준이다. 쾌적하고 아늑한 독서실이 되고도 남는다.
그런 획기적 발전이 시설에만 그치지 말고, 정신 근육을 키우는 독서실 기능도 한다면 일석이조가 되지 않을까….
장소현 / 시인·극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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