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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기희의 같은 하늘 다른 세상] 나에게 필요한 시간들

이기희

이기희

처음으로 추수감사절을 조용하게 보냈다. 뉴저지 있는 딸 가족과 샌디에이고에 사는 아들 내외와 손주들 제발 오지 말라고 미리 당부했다. 홀로서기 연습하게 도와 달라고 애걸(?)했다. 우서방이 떠난 뒤 애들은 유난히 내 일거수일투족에 신경을 곤두세운다. 혼자라서 걱정하는 건 고맙지만 짐이 되는 것은 싫다. 어린애 취급받는 게 낯설고 귀찮다.
 
몇해 동안 딸 가족은 추수감사절과 크리스마스를 우리집에서 보냈다. 친정집에 오기 위해 딸은 추수감사절을 앞당겨 시댁 식구와 보내는 번거로움을 겪는다.  
 
올해는 딸은 시댁에서, 아들은 며느리 집에서 지내라고 경고성(?) 문자를 보냈다. 혼인한 자식은 반만 내 자식이다. 사돈과 반반씩 나누어 가지는 것이 옳다.  
 
우리집은 요란스럽게 추수감사절과 크리스마스, 신년잔치를 벌인다. 가족과 친지, 친구들이 모여 국경일이나 경축일을 맞는 것처럼 요란을 떤다. 터키는 제일 큰 놈으로 골라 뱃속에 가지각색 재료를 넣은 스터핑으로 채워 넣고 반나절 정도 구우면 노릇하고 기름기가 반짝이는 갈색옷 입은 칠면조 요리가 완성된다. 꼭두새벽에 일어나 칠면조 뱃속에 넣을 스터핑을 만드는 건 내 임무다. 레이쳘레이쇼 푸드스타일리스트로 활약하던 둘째가 총대를 매고 추수감사절 식탁을 장만한다. 맛나고 아름답게 잡지에 나오는 비주얼로 식탁을 후다닥 차린다. 이럴 땐 신문방송학 전공하고 컬리너리스쿨 학비 대느라 쪼그라진 개미허리를 편다. 미식가 우서방은 ‘요리는 만들면 배불리 먹을 수 있지만 그림은 먹을 수도 없어 무용지물’이라고 은근히 내 예술성에 물 먹인다.  
 


‘한끼 잘 먹기 위해 이토록 많은 시간과 정성을 들여 음식을 장만해야 하는지’라는 생각이 들지만 막상 온 식구가 모여 시끌벅적 즐겁게 뭉치는 걸 보면 흐뭇하다. 단짝을 만난 것처럼 잘 노는 손주들 보며 ‘맛난 음식’은 피나 물보다 진하다는 생각을 한다.  
 
혼자라서 외로운 게 아니다. 같이 있어도 외롭다. 외로움은 달래는 것이 아니라 홀로 삼키는 것이다. 익숙해지기 위해선 연습이 필요하다. 설레발 치며 호들갑 떨면 일시적으로 동정을 받겠지만 주변을 지치게 한다. 외로움의 뿌리는 사라지지 않는다. 기숙사에 떨구며 자식은 태어났을 때와 부모 곁을 떠날 때 두번 탯줄을 자른다고 했다. 이제 세번째 탯줄을 자를 시간이다. 자식과 부모 사이에 묶여있는 끈들을 부모가 잘라주지 못하면 자식은 새장에 반쯤 갇힌 새처럼 퍼득거리며 자유롭게 살지 못한다.
 
플랜 A가 없으면 플랜 B를 가동시키면 된다. 멍청하게 두 손 놓고 있지 않고 그동안 하고 싶었던 일을 한다. 코니쉬 헨 여러마리를 구워 혼자 지내는 어른들 집에 배달하기로 한다. 칠면조가 질긴 반면 코니쉬 헨은 사이즈가 작고 부드러워 이가 약한 어른들 먹기에 좋다. 반쪽씩 잘라 스터핑를 넣고 엎어서 구우면 껍질은 바싹해지고 속이 촉촉하고 부드럽다. 올리브오일에 가지각색 채소 볶고 감자 으깨서 고기 넣고 볶아 동그랗게 빚어 멋을 부리면 고급 식당 캐리아웃 못지 않다.  
 
바쁘면 외로울 시간 없다. 늘 하던대로 꼭두새벽에 일어나 닭 육수 빼서 스터핑을 만든다. 사랑이던 물질이던 줄 것이 많아지면 사는 게 행복하다. 찌꺼기를 버리면 알짜배기만 남는다. 꼭 필요한 것만 고르면 나머지 것들은 필요 없다. 치렁치렁 감싸고 있는 덧없는 부귀영화의 꿈을 접고 넘쳐 오르는 샘물 같은 깨끗한 정화수를 마신다. 무엇인가 새로운 일을 시작하는 사람의 하루는 외롭지 않다.  
 
부단한 일거리로 몸을 움직이면 외로움도 약이 된다. 영혼의 쉼터에는 남은 시간 꼭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그 목록이 적혀 있다. (Q7 Editions 대표, 작가)
 

이기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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