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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OCUS] 여론 뭇매에 명문화…"강제성은 부족"

[연방대법관 윤리 강령]
법관들 잇단 스캔들 공개에
‘오해 불식’ 목적으로 채택

대법원 사상 최초 지침에도
구속력 없어 효율성 불분명

대법관 신뢰도 역대 최저치
강령 채택이 쇄신 계기 기대

연방 대법원 건물과 대법관 9명? (왼쪽부터) 에이미 코니 배럿, 닐 고서치, 클래런스 토머스, 존 로버츠(대법원장), 브렛 캐버노, 엘레나 케이건, 소니아 소토마요르, 새뮤얼 얼리토, 커탄지 브라운 잭슨 대법관. [연방대법원 웹사이트]

연방 대법원 건물과 대법관 9명? (왼쪽부터) 에이미 코니 배럿, 닐 고서치, 클래런스 토머스, 존 로버츠(대법원장), 브렛 캐버노, 엘레나 케이건, 소니아 소토마요르, 새뮤얼 얼리토, 커탄지 브라운 잭슨 대법관. [연방대법원 웹사이트]

연방 대법원이 최근 대법관 ‘윤리 강령(Code of Conduct)’을 발표했다. 대법원에서 윤리 강령을 채택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윤리 강령 채택은 클래런스 토머스 대법관과 새뮤얼 얼리토 대법관이 후원자로부터 부적절한 선물과 여행 접대 등을 받은 사실이 공개되면서 내려진 결정이다.
 
토머스 대법관은 텍사스주 부동산 사업가로부터 자가용 비행기 등 호화 여행을 제공받았다. 얼리토 대법관도 억만장자와 알래스카 낚시 여행 등을 다닌 사실이 공개됐다.  
 
자신의 서적을 강매한 대법관들도 논란의 대상이 됐다. AP통신에 따르면 대학이 기부금을 모으기 위해 대법관을 초청해 만찬이나 강연을 개최하는 과정에서 법관들이 자신들의 책 구매를 강요했다는 것이다. 대표적인 인물이 진보성향의 소니아 소토마요르 법관이다. 특히 그는 법원 직원들을 책 판매에 동원한 혐의도 받고 있다.  
 
대법관은 신뢰의 상징이다. 하지만 이념과 정파로 분열되고 일부 법관들의 일탈이 공개되면서 신뢰도는 최저 수준을 기록하고 있다. ‘6대 3 보수 우위’ 구도가 된 대법원의 우편향 판결도 논란이  많다.  
 
퀴니피액대가 지난 7월 발표한 여론 조사에 따르면 ‘연방 대법원의 직무 수행 방식을 지지하는가’라는 질문에 58%가 ‘지지하지 않는다’고 답했다. 지난 2004년 이 대학에서 첫 조사가 시작된 이래 가장 낮은 수치다. 이같은 상황에서 종신직인 현행 제도를 ‘임기 제한’으로 고치자는 의견도 63%에 이른다.  
 
갤럽의 조사에서도 대법원 위상은 추락하고 있다. 1031명의 미국인을 대상으로 한 신뢰도 조사에서 보통 이상의 신뢰를 보인 비율은 2021년에는 37%, 2022년에는 25%, 2023년에는 27%로 나타났다. 지난해보다 신뢰도가 조금 오르긴 했지만 2년 전과 비교하면 무려 10%p 하락했다.  
 
대법관은 정치적 외압에 흔들리지 않는 독립성과 최고의 권위로 판결에 임한다. 낙태, 이민, 동성애 문제, 소수계 정책 등 미국 전체에 영향을 미치는 사안도 대법원의 최종 판결로 결정된다. 또한 대통령 선거에서도 논란이 발생하면 판단은 대법원이 담당한다. 2000년 대통령 선거에서 앨 고어 후보는 50만표가 앞섰지만, 선거인단 확보에서는 266명에 그쳐 조지 W. 부시에 뒤졌다. 선거 후 플로리다주 재검표 사태까지 갔지만, 고어는 대법원의 판결을 존중해 패배를 인정했다.  
 
윤리 강령 채택에 맞춰 대법원은 “윤리 강령이 없었기 때문에 대법관은 법과 규정의 제재를 받지 않는 것으로 오해를 받아 왔다”며 “이를 불식시키기 위해 규정 명문화를 채택하게 됐다”고 밝혔다. 즉 대법관이 ‘어떠한 제약도 없이 활동해 왔다’ 일반의 인식을 바로잡겠다는 것이다.  
 
대법원이 채택한 윤리 강령은 특별한 것이 없다. 새롭게 나온 내용도 없다. 이제까지 하급법원 법관들에게 적용된 규정과 다를 바가 없다. 다만 사법부 최고 권위의 대법원이 채택했다는 점이 다를 뿐이다  
 
존 로버츠 대법원장을 포함해 9명이 서명한 9페이지 분량의 이번 강령의 핵심은 대법원의 공정성과 독립성을 지키자는 것이다. 사법부 최고 권위의 대법원이 공정한 판결을 위해 부적절한 활동을 금하고 독립적으로 업무를 수행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강령은 법관이 정치적, 사회적, 금전적 영향에 구애받지 않도록 세부적인 행동 규범을 명시해 놓고 있다.
 
엘레나 케이건 판사는 이와 관련 “법관은 가족, 사회적, 정치적, 재정적 관계가 공적인 행동과 판단에 영향을 미치도록 하면 안 된다”며 “법관의 품위를 손상하고 공무 수행을 방해하며 공정성을 훼손하는 사법 외 행동에 참여하는 것은 허용되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연방 대법관의 임기는 종신이다. 4년마다 바뀌는 대통령에 구애받지 않고 법정신에 따라 소신껏 판결할 수 있는 자리다. 대법관은 스스로 물러나거나 은퇴하는 경우를 제외하고는 임기를 제한받지 않는다.  
 
대법관도 탄핵의 대상이 되기는 한다. 하지만 지금까지 단 1명만 탄핵 때문에 자리에서 물러났다. 그것도 1805년을 마지막으로 지금까지 하원 탄핵이 없어 사실상 대법관 해임 장치는 없는 셈이다. 대법관 직무를 유지할 수 있는 유일한 조건도 ‘좋은 행동(good behavior)을 하는 동안’이라는 모호한 규정을 정해 놓고 있을 뿐이다.
 
연방 대법원이 최초로 윤리 규정을 채택하기는 했지만, 구속력이나 강제성에서 논란이 많다.  
 
진보성향 옹호 단체의 세라 립톤-루벳은 윤리 강령을 발표하기는 했지만 미진한 부분이 많다고 주장한다. 특히 윤리 강령에 ‘Should’라는 단어가 53번 사용된 것에 비해 ‘Must’는 6번만 나온다고 지적한다. 도덕적 당위성을 지적하며 권고의 의미가 강한 ‘Should’가 많지만 공적인 규율과 법에 대한 강제성을 함축하는 ‘Must’는 적다는 것이다. 그만큼 법적인 구속력이 부족하다는 주장이다.  
 
또한 법관이 윤리 강령을 준수하지 않아도 사실상 제약할 수 있는 강제 수단이 없기 때문이다. 위반이 발생했을 때 조사할 수 있는 체계도 갖춰져 있지 않은 상황이다.  
 
AP통신은 “강제 수단이 없어 강령 준수 여부의 결정도 대법관 각각의 자율에 맡길 수밖에 없다"고 보도했다. 강령이 실효성을 가지려면 위반 시 집행의 주체가 있어야 하는데 누가 이를 담당하는지 불분명하다는 것이다.  
 
지금까지 성역이었던 대법원의 명성에 금이 가고 있다. 대법원의 신뢰를 더 추락시킬지, 아니면 회복시킬지는 오로지 법관들에 달려 있다.

김완신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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