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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산책] 붉은악마는 살아있다

장소현 시인, 극작가

장소현 시인, 극작가

한국이 일본 대중문화에 공식적으로 문호를 개방한 것은 25년 전이었다. 개방 당시에는 걱정과 위기감이 매우 컸고, 반대도 아주 많았었다. 하지만 그 25년 동안 대한민국은 눈부신 발전을 거듭해, 지금은 한국문화가 일본문화를 훌쩍 뛰어넘어 세계 정상을 향하고 있다. 놀랍고 자랑스러운 일이다.
 
도대체 그런 힘이 어디서 나온 것일까? 여러 가지 대답이 가능하겠지만, 나는 우리 민족 특유의 흥과 신명, 그리고 파격적 역동성이라고 생각한다.
 
가장 구체적인 예가 2002년 월드컵 축구 거리 응원과 붉은 악마의 열기다. 온 세계가 깜짝 놀라 감탄했고, 우리 스스로도 놀란 엄청난 저력이었다. 우리에게 그런 저력이 있었던 것이다.
 
700만 명이 참여한 길거리 응원에서 활화산처럼 분출하는 열기, 하나로 뭉쳐진 힘, 사고 하나 없는 것은 물론 쓰레기 하나 남기지 않는 질서정연함에 세계가 놀랐다. 유례가 없는 일이었다. 공포와 전율을 느꼈다는 소감도 많았다.
 


그 벅찬 감동을 통해 우리는 “하면 된다. 우리는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확인했고 “꿈은 이루어진다”는 믿음을 갖게 되었다. 그때까지 우리를 지배하던 ‘엽전’의 열패감을 완전히 떨쳐버리고 긍정적 민족으로 새롭게 태어난 것이다. ‘대~한민국! 짜작∼짝 짝짝’이라는 구호와 손뼉은 촛불로 이어졌고, 오늘의 한류와 K-파워로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많은 지식인이 붉은악마의 문화적 의미와 인류 문명을 이끌 역동적 가능성에 주목했고, 거기서 우리 겨레의 저력과 미래의 희망을 보았다. 대표적인 분이 이어령 교수와 김지하 시인이다. 김지하 시인은 자발적 역동성의 역사에, 이어령 교수는 신바람 문화에 주목한다.
 
김지하 시인은 붉은악마의 물결을 ‘6월 개벽’이라고 명명하고, 그 역동성과 문화적 의미를 다각도로 분석한 후, 붉은악마와 촛불 세대가 한민족을 대표해 ‘성배(聖杯)’를 부여받을 주체가 될 것이라고 밝혔다. 또, 붉은악마는 어느 날 갑자기 땅속에서 솟아난 것이 아니라, 한민족 민중사에 면면히 흐르는 자발적 역동성에서 나왔다는 점을 강조하기도 했다.
 
한편, 이어령 교수는 “붉은악마 현상은 한국뿐만이 아니라 21세기에 세계의 문화 코드를 바꾸는 발화점일 수 있고, 길거리 응원은 ‘세계를 바꾸는 무혈 혁명이자 문화혁명’이다”라고 의미를 부여했다. 또, 붉은악마의 붉은색과 ‘대~한민국’이라는 구호를 분석하면서, “붉은악마는 모든 콤플렉스에서 벗어나 인터넷과 휴대전화, 전광판과 결합한 디지털형 인간이다. 이 디지털형 인간이 오프라인에서 한국인의 고유한 특질인 ‘신바람’과 융합하면서 축제를 만들었고, 이 축제가 벨벳 혁명을 일구었다”고 설명했다.
 
두 분은 ‘대~한민국’이라는 구호와 손뼉 ‘짜작∼짝 짝짝’으로 이루어진 ‘엇박자’와 태극기를 분석하는 데 많은 노력을 기울이기도 했다. 김지하 시인은 이 엇박의 문화가 태극과 음양오행에 바탕을 두고 있으며, 엇박의 ‘혼란스러운 균형’이 한민족 문화의 핵심이라‘고 강조한다.
 
붉은악마와 촛불은 그저 과거에 있었던 일이 아니다. 지금도 우리 가슴속에 생생하게 살아 있고, 언제든지 분출할 수 있는 역동성이다. 지금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그런 저력을 믿는 일이다. 타향살이가 고달프고 외로울수록 필요한 것은 스스로를 믿고 사랑하는 자신감이다. 우리는 할 수 있다, 꿈은 이루어진다는 자신감! 짜작∼짝 짝짝!
 
“붉은악마는 일과성이 아니다. 또 온다. 형태를 달리해서 다시 온다”라는 김지하 시인의 말씀을 잊지 말아야겠다.

장소현 / 시인·극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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