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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아침에] 야자수의 가을 연가

김영애 수필가

김영애 수필가

샌타모니카 해변가로 나섰다. 쪽빛 하늘 아래 한가한 구름을 바라보면서 가을맞이를 하고 싶어서다. 줄지어 선 바다 주변의 야자수가 이국적인 정취를 뿜어내고 있다.
 
 바람결에 가을의 외로움을 호소하는 듯한 야자수는 왠지 우수에 젖어 보인다. 계절 탓이리라. 가을이면 모르는 사람이 아름다워 보이듯 낯설게 서 있는 야자수에 계절의 정취가 깃들어서인지 제법 운치가 느껴진다.  
 
 어찌하여 야자수는 고향인 열대지방을 떠나 이곳 샌타모니카 해변에 정주하게 된 것일까. 낯설고 외진 곳에서 삶을 이어가고 있는 야자수가, 지나온 세월의 나이테만큼이나 무수한 사연을 담고 있는 듯싶다. 자신의 생을 올곧게 세우고, 앞으로는 탁 트인 푸른 바다와 뒤로는 청산을 품으며 세월 속에서 점차 숙성되어 갔으리라.  
 
 딱딱한 줄기같이 튼실한 야자수이지만, 새로운 계절을 맞으며 싸한 가을바람에 가슴이 여려졌는지 불어오는 바람결에 속절없이 흐르는 세월의 무상함을 온몸으로 토해내는 것 같다. 아니면 이국땅에서 뿌리를 내린 자신의 삶을 붉은 저녁노을과 함께 되돌아보며 반추하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야자수에 가을이 다가왔음이 감지되는 것은 여름내 푸르기만 하던 잎이 하나씩 떨어질 때이다. 쌓여 온 한 해의 후회와 회한들을 낙엽처럼 떨구며 묵었던 삶의 찌꺼기들을 비워내고 있는 야자수. 어쩌면 나무는 하나씩 잎을 지울 때마다 누군가에게 가을 편지를 쓰고 있을 것도 같다. 둔하고 세련된 편지는 아니지만, 삶을 걷는 사람이라면 누구라도 뜨겁던 여름의 무상함과 덧없이 흐르는 삶을 깊이 사유하게 만드는 편지이리라.  
 
 싸늘한 해변 바람을 외롭게 맞이하면서 편지 끝에는 쓸쓸하고 가슴 시린 삶이지만, 생은 그래도 살아 볼 만큼 의미가 있다고 말하고 있다. 가을이면 외로워지는 것은, 생명체 자체가 홀로 고독하게 걸어가야만 하는 숙명이기 때문임을 이야기해준다. 또 야자수는 낙엽이 지면 푸르던 꿈이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한 해의 꿈이 발효되고 숙성되어 내면이 더 깊이 성숙하여 간다며 격려하고 있다.
 
바람결에 흔들리는 야자수 잎은 갈대꽃같이 갈라져 있다. 그래서인가, 야자수 잎에서는 갈대꽃 같은 노랫소리가 들린다.  
 
“모질고 힘든 생이지만 삶을 사랑합니다. 힘들고 고되기에 그 자체가 더욱 의미 있고 아름답습니다. 생은 자기만이 창조해가는 유일한 자신만의 예술이지만, 어떠한 생이라도, 삶은 곱게 그려진 한 편의 수채화입니다.”  
 
갈대를 닮은 야자수의 노래는 쪽빛 가을바람과 함께 울려 퍼진다. 그리하여 갈대의 꽃말인 ‘깊은 애정’은 삶을 사모하는 야자수를 통해 가을 연가가 되어 산과 바다에 메아리친다.  
 
낯선 이국땅에서 머나먼 고국이 있는 태평양을 바라보며 향수에 젖어 들던 나도, 어느새 야자수 나무가 되어 쪽빛 가을 연가를 따라 부르기 시작한다. 

김영애 /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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