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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호철의 시가 있는 풍경] 친구의 강

신호철

신호철

1 : 70년의 강물이 흘렀다 / 70년의 해가 뜨고 / 70년의 밤이 지나갔다 / 어제도 걸었고 오늘도 걷고 있고, 내일도 걸어야 할 길 / 70년 동안 하루도 빠짐없이 걸었던 길이 있었다 // 깃털이 비슷한 새가 모여 살 듯 / 멀리 시카고까지 날아와 같은 둥지를 틀었다 / “잘 지냈어?” “응 늘 그렇지 뭐” / 여전한 대답에 별 일 없이 잘 살고 있다고 믿었다 / 얻는 것이 있으면 잃는 것도 있었고 / 잃은 것이 있으면 얻는 것도 있었다 / 돌짝 밭을 힘겹게 걸을 때도 있었고 / 양팔을 펼치고 하늘을 나는 듯 세상을 다 가질 때도 있었다 // “뭐 사는 게 별거 있냐? 근대 요즘 좀 힘이 빠진다” / 가을엔 가까운 곳에 몇 일 여행 가자던 친구 / Emergency로 실려간 그가 위암 4기란다 / 치료를 안 하면 한달, 안 받으면 1년이란다 / 날은 어두워지고 머리 속은 온통 까만 카오스 // 70년의 강물이 흐르고 / 70년의 해가 뜨고 / 70년의 밤이 지나가는데 / 친구야, 병상의 하루를 잘라 나누어 살자 / 먼저이고 나중인 듯 함께 기대어 걷자 / 시카고 가을 들녘 코스모스처럼 흔들리며 / 널 위해 걸음 걸음 환한 꽃등 밝혀 놓으마
 
 
2: 단풍이 아름다운 숲길을 친구와 걷고 있다 / 바람이 불고 낙엽이 구른다 / 저 산도 옷을 벗는다 / 그저 풍경 일 뿐이다 / 나의 풍경은 사람 이었으면 한다 / 그 마음 이었으면 한다 / 알 것 같은 마음이 내 안에 담겨지는 / 함께 걸을 수 있는 사람이었으면 한다 / 소리 없이 흐르는 강물이 되고 / 지는 노을에 눈시울 붉힐 줄 아는 / 별빛처럼 오랜 기다림의 이야기들이 낯설지 않은 / 한 사람 이었으면 좋겠다 / 한 방울의 피도, 살도 섞이지 않아도 / 내가 너 이고 / 네가 나 이듯 / 절절한 풍경이고 싶다. 
 
 
오늘 그대의 나라가 불행합니까? 곳곳에 피어나는 들꽃. 부드러운 들판의 축제가 가슴에 사무치게 아름답습니다. 마침표를 찍은 풍경이 아니라 지어져가는 풍경입니다. 내내 곱게 내려 앉는 사랑입니다. 이어져가는 생명입니다. 꽃처럼 환한 미소입니다. 하늘로 날아오르는 자유입니다. 오늘 그대의 나라가 힘들고 고통스러울지라도 우리 모두는 저마다의 길을 걸으며 저 마다 허락된 시간 속에 살아갑니다. 결국 한 사람입니다. 사람이 되어 가는 일입니다. 완성된 사람이 아니라 지어져 가는 사람입니다. 나무의 모양만으로는 나무를 알 길이 없습니다. 열매로 나무를 압니다. 열매가 나무의 모든 것은 아니지만 나무의 결국은 열매입니다. 결국 사람입니다. 사람이 되는 일입니다. 삶은 사람이 되어 가는 과정입니다. 사람의 무기는 근본이 되어질 때 비로소 힘이 납니다. 오늘 그대의 나라가 깊은 평안 속에 거하기를 바랍니다. 오늘 세상이 사라진다 하여도 한 그루 사과나무를 심는 심정으로 허리를 굽히고 무릎을 꿀어 나머지 시간들을 가꾸기를 바랍니다. 친구의 강은 오늘 아침에도 흐르고 있습니다. 흐른 만큼 짧아지기는 했어도 의연하게 사람이 되어가는 모습은 먼동처럼 황홀하고 노을처럼 아름답습니다.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는 B에게 〉 (시인, 화가)
 

신호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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